누구든 죽음 직전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다면 분명 신의 계시라고 믿을 것이다. 마치 신이 점지한 것처럼 절망적인 순간에 모든 사람들이 절실히 갈구하는 그것을 현실로 이루어 내는 진정한 야구 영웅은 이 시대에 흔치 않다.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가 유명해진 것은 최다안타 신기록 때문이었다. 타고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3년간 2군에 머무르고 있었던 이치로는 1994년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부임한 오기 아키라 감독에 의해 거듭났다.
연간 130경기를 치르던 당시 신인 타자가 시즌 10게임을 남기고 190안타에 이르자 한번도 넘지 못했던 200안타 고지 정복에 전 일본의 야구팬들이 열광하면서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매 경기의 안타 수가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관심이 폭발적으로 집중되면서 일본 국민들은 매일 매일 새로운 야구 신화에 매료되었고 결국 210개의 안타로 고지를 점령한 이치로는 우상이 됐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영웅이라 부르지는 않았다. 일본 야구의 영웅은 나가시마 시게오 단 한사람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대학 야구의 타율과 홈런을 경신하고 천재 선수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1958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한 나가시마는 첫해부터 29홈런, 92타점으로 타격 2관왕에 올랐고 153개의 안타로 최다안타 타이틀도 석권했다.
이후 3년 연속 수위타자에 이어 6년 연속 최다안타의 타이틀을 따내면서 슈퍼스타에 오른 나가시마는 17년간의 선수 생활 동안 슬럼프도 거의 없었고 가와카미 감독의 'V9'에 중추가 되어 전후 일본 야구 중흥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영웅의 칭호를 얻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항상 결정적인 기회에서 천금과 같은 안타나 홈런을 날렸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숨죽인 박빙의 승부에서 최고의 투수들을 상대로 그는 어김없이 해결사의 역할을 다해 주었다. 그가 타석에 나서면 팬들은 절로 믿음을 가졌고 그는 그 믿음에 부응하는 산물로 팬들은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은퇴를 하면 누구나 잊혀져 가기 마련이지만 나가시마 시게오는 오히려 전설이 되어 유일한 일본의 영웅이 되었다.
이승엽이 그렇다. 그의 야구는 늘 극적인 순간이 등장하는 드라마같다. 그리고 그는 주인공으로 나서 결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2002년 삼성 라이온즈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 때 동점 3점홈런이 그랬고 WBC나 베이징올림픽 일본전의 결승 투런 홈런이 그랬다. 애타게 기다리던 56호 홈런도 마치 그 순간이 축제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오랜 기다림 끝에 극적인 순간에서 터졌다.
그래서 더 전율을 느끼고 위대하게 각인된다. 선수 자신에게는 높은 경지에 도전하는 집념과 승부 근성의 집약으로 이루어진 결과이겠지만 그와 함께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가슴 속의 선물이 되었다. 어디 영웅이 따로 있겠는가? 우리 모두가 바라는, 꼭 필요한 순간에 항상 있는 그가 바로 진정한 영웅이며 산타클로스인 것이다. 대구방송 해설위원
※베이징올림픽 기간 중 쉬었던 '최종문의 펀펀야구'를 이번 주부터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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