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역전 투런포…한국, 日 격파 결승 진출

입력 2008-08-23 07:34:42

베이징의 이승엽은 초라해 보였다. 한국 야구 대표팀의 4번 타자를 맡고 있긴 했지만 타격 밸런스가 흐트러져 범타나 삼진으로 물러나는 모습은 더 이상 과거의 이승엽이 아니었다. 22일 일본과의 준결승에서도 일본 투수들은 홈런포를 가동 중인 6번 타자 이대호를 두려워할 뿐 이승엽은 어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이승엽의 배트가 날카롭게 돌아갔다. 그는 4번 타자였다.

22일 베이징의 우커송 야구장에서 열린 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 준결승전에서 한국은 김광현의 호투와 이승엽의 극적인 투런 홈런으로 일본에 6대2로 역전승, 결승에 올라 쿠바와 금메달을 다투게 됐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준결승전에서 미국에 2대3으로 패해 동메달에 그친 한국은 베이징에서 숙적 일본을 본선 풀리그에 이어 두 번이나 격파하며 올림픽 첫 결승 진출의 감격을 맛봤다.

한국은 경기 초반 선발 투수 김광현이 흔들려 일본에 끌려갔다. 1회초 일본의 선두 타자 니시오카 츠요시의 내야안타와 실책 등으로 내준 1사 3루의 위기에서 아라이 다카히로의 내야 땅볼로 선취점을 허용했고 3회초에도 아오키 노리치카에게 좌전 적시타를 얻어맞아 0대2로 뒤졌다.

날카로운 구위를 보인 김광현은 이후 안정을 찾아 8이닝 동안 삼진 6개를 빼앗으며 6안타 2실점으로 잘 던졌다.

한국은 4회말 반격에 나서 이용규와 김현수의 안타에 이어 이승엽의 내야 병살타로 이용규가 홈인, 1점을 따라붙었다. 7회말에는 이대호의 볼넷과 고영민의 안타로 만든 1사 1,2루의 기회에서 대타 이진영이 일본의 네번째 투수 후지카와 규지로부터 통렬한 적시타를 뽑아내 동점을 만들었다.

일본은 선발 투수 스기우치가 4회 김동주에게 안타를 허용하자 가와카미 겐신으로 교체한 데 이어 6회에 나루세 요시히사, 7회에 후지카와 규지, 8회에 이와세 히토키를 투입하는 등 총력전을 벌였다. 그러나 일본 최고의 강속구를 지닌 마무리 투수 중 한 명인 후지카와가 이진영에게 안타를 맞자 분위기는 한국 쪽으로 돌아섰고 운명의 8회말이 다가왔다.

한국은 8회말 선두 타자 이용규가 일본의 이와세 히토키로부터 좌전 안타를 뽑아낸 뒤 김현수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고 1사 1루에서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섰다. 앞선 3타석에서 병살타 한번, 삼진 두 번으로 고개를 숙였던 이승엽은 볼 카운트 2-1에서 5구째 직구를 잡아당겼다. 완전한 풀 스윙이 아니었고 스윙 팔로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타구는 쭉쭉 뻗어 일본 응원단이 있는 오른쪽 외야석에 떨어졌다. 한국 덕 아웃에서는 선수들이 일제히 용수철 튀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고 일본 덕 아웃은 낭패감 서린 분위기 속에서 침묵했다.

이후 한국의 방망이는 계속 불을 뿜었다. 김동주의 중전 안타와 고영민의 2루타, 강민호의 좌중간 2루타가 연이어 터지며 2점을 추가, 순식간에 승부가 기울었다. 9회 마무리 투수로 나온 윤석민은 일본의 세 타자를 삼진과 범타로 처리했고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한국 선수들은 그라운드로 몰려 나가 한데 뒤엉켰다.

김지석기자 jise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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