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보다 더 만화같은 그 곳…제50회 부산 '코믹월드'

입력 2008-08-23 06:00:00

▲ 지난 1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아마추어 만화 동인 축제
▲ 지난 1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아마추어 만화 동인 축제 '코믹월드' 행사장. 관람객들이 팬시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만화와 만화영화가 대중매체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던 때가 있었다. 음성적으로 유통되던 일본 '망가(漫畵)'와 '아니메(anime)' 판로가 열리던 때와 비슷한 시점이었다. 한때 저질 하위문화로 치부되던 만화가 산업적 가치로 인해 주목을 받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만화(영화) 속 캐릭터 의상을 꾸며 입는 '코스프레(영어 'costume play'의 일본식 표현)'가 부각되기도 했다. 만화 동인들과 동호회를 중심으로 만화는 여전히 생산되고 유통되며 향유되고 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펼치는 축제의 현장을 찾아봤다.

◆아마추어 만화인들의 한판 축제

지난 17일 부산전시컨벤션센터(벡스코) 전시장. 벡스코 광장에서부터 코스프레 차림의 청소년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자신의 옷차림을 뽐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현실세계와는 동떨어진 느낌의 '코스퍼(cosper·코스튬 플레이어의 축약어)'들의 모습에서 색다른 재미가 느껴졌다. 1층의 전시장에 들어서니 '코믹월드(Comic World)'에 참가한 부스가 한눈에 들어왔다. 200개 가까운 부스는 부산·경남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몰려든 만화 동인·동호회의 판매·홍보 중심으로 꾸며졌다.

앳된 얼굴의 10대부터 20대 후반 이상의 사람들이 저마다 캐릭터로 부스를 꾸몄다. 부스라고 해야 길쭉한 책상 하나에 의자 몇 개가 전부이지만 이를 어떻게, 어떤 상품으로 꾸미느냐에 따라 관람객 동원에 차이가 있었다. 각 부스에서는 캐릭터를 이용한 팬시 상품과 회지(아마추어 만화 동인지)를 판매한다. 팬시 상품으로는 브로마이드나 포스터, 파일 케이스, 쇼핑백, 휴대폰 고리·버튼 등이 있었다.

'에고'라는 별명을 쓰는 20대 후반의 여성 참가자는 일본의 복(福)고양이 캐릭터인 '마네키네코' 상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녀는 "만화 관련 행사 구경만 하다가 판매 중심인 코믹월드에 참가했다. 예전에는 동인이나 동호회로 참가했지만 이제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고 있다"고 했다. 행사에 참가한 지 2년 정도 됐다는 그녀는 "처음에는 판매가 잘 안 됐으나 차츰 상품을 다양하게 갖추면서 본전 이상은 벌고 있다"고 밝혔다.

16, 17일 이틀간 열린 '부산 코믹월드'는 지난 2000년 11월부터 시작됐다. 이번이 50번째 행사. 1999년 5월 서울에서 첫 행사가 열렸다.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화창작의 즐거움을 나누고 만화에 대한 열정으로 만들어가는 만화인들의 특별한 축제'를 기치로 내걸었다. 대구에서도 2001년 8월부터 2002년 11월까지 6차례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현재 서울 행사는 연 10회, 부산 행사는 연 6, 7회꼴로 열리고 있다. 이번 부산 행사에는 200여개의 부스가 참가했다. 서울 행사에는 350~700여 개의 부스가 참가하고, 관람객은 8천~1만여명 수준이라고 한다. 행사 관계자는 "코믹월드는 순수 아마추어 행사로 일종의 '벼룩시장' 분위기라고 보면 된다. 방학 때엔 중고교 학생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각종 부대행사…왜색 시비는 여전

원래 일본의 소규모 만화 동인 행사였던 '코믹월드'는 현재 일본, 홍콩, 대만, 중국 및 북미, 남미, 하와이 등에서도 개최되는 국제적인 아마추어 만화 축제가 됐다. 동아리 판매전을 중심으로 일러스트 콘테스트, 코스프레 콘테스트, 엽서 그리기 대회, 만화노래자랑, 만화가 사인회, 성우 토크쇼 등 다채로운 이벤트가 열린다. 참가자는 자신의 지역이나 특성을 고려해 서울이나 부산 행사에 선택 참여한다.

'cat or fish'라는 부스를 차린 박강일(24)씨는 전남 진도에서 왔다. 2002년부터 꾸준히 참가하고 있단다. 그는 "인지도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코믹월드에만 참가하고 있다"고 했다. 벌이는 시원찮은 모양이다. 동인지 중심으로 팔고 있다는 그에게 수입을 물으니 "거의 취미생활을 유지할 정도"라고만 했다.

이번 코믹월드 행사는 일러스트와 코스프레 콘테스트 결과 발표에 이어 코스프레 무대행사로 끝을 맺었다. 만화가 좋아서 모인 동인들의 행사인 만큼 콘테스트 수상자들의 면모에 환호와 갈채를 보냈다. 관람객 중에는 수상자들과 기념촬영을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마지막에 열린 코스프레로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는 '무대 코스'가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온라인게임 '던전앤파이터'나 '세일러문' '가정교사 히트맨 리본' 등의 캐릭터 복장으로 연기와 춤 실력을 뽐냈다. 특히 이달 초 열린 '2008 한일만화페스티벌' 코스프레 무대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부산의 '스카이'가 출연하자 객석 곳곳에서 환호가 터졌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하는 만화 동인들에겐 이젠 이런 행사가 자연스럽다. 그러나 기성세대에게는 여전히 비판적 시각이 존재한다. 온라인백과사전 위키피디아 한국어판은 일부 코스프레 참가자들이 행사장까지 의상을 입고 가거나 주변 건물 화장실에서 갈아입는 것이 '동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고 기술했다. 행사 주최 측에서도 "코스프레의 경우 여전히 왜색 시비가 잦다"고 했다. 방송사에서 행사를 촬영한 뒤 이를 왜색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많아 참가자들이 촬영을 꺼린다는 것이다. 기자도 '촬영되는 모든 피사체에게 개별적인 허가를 반드시 구해야 하며 촬영사진 및 영상을 사용할 때에는 피사체에게 알려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란 주의 사항을 사진 촬영 전에 숙지해야만 했다.

한국의 코스프레는 일본 영향을 받긴 했지만 다른 방향으로 발전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캐릭터 재연도 늘었고, 스스로 만화를 창작해 그 주인공을 표현하는 수준이 됐다. 일본처럼 캐릭터를 그대로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를 엄밀하게 분석한 뒤 새롭게 해석하는 방식으로 이를 즐긴다. 무대 코스가 인기를 끄는 것도 한국만의 특성이다. 조영아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는 "코스프레 문화가 산업으로 연결될 발판이 마련됐다"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 일반인들이 코스프레를 하나의 문화 장르로 인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글·사진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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