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보다 조국" 이승엽-아베 '숙명의 대결'

입력 2008-08-22 08:33:01

일본 프로야구의 명문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진한 우정을 나누고 있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동반 부진에 빠져 있는 이승엽과 아베 신노스케가 각자의 조국에 올림픽 메달을 선물할 수 있을까.

이승엽이 처음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은 2006년부터 아베는 이승엽을 챙겨왔다. 원정 경기에 나서면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하는가 하면 틈틈이 배운 한국어로 격려의 말을 적은 쪽지를 건넨 것도 여러번. 올 시즌에 이승엽이 타격 부진으로 2군으로 내려가자 정기적으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등 낯선 이국 땅에서 이승엽의 든든한 원군이 되어 줬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태극기와 일장기를 각각 가슴에 달고 적으로 만났다. 이승엽은 한국 타선의 중심 역할을 맡았고 아베는 요미우리에서처럼 주전 포수로 뛰었다. 공격의 핵인 이승엽과 한방을 갖춘 아베는 15일 예선에서 맞닥뜨렸으나 모두 4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더구나 이승엽은 삼진 3개, 아베는 삼진 1개를 당해 고개를 떨궜다.

이날만 방망이가 헛돌았던 것은 아니다. 이승엽은 6경기에 모두 4번 타자로 나섰으나 타율 0.136(22타수 3안타), 2타점, 3볼넷, 5삼진을 기록했다. 아베의 성적표 역시 좋지 않다. 일본은 아베가 하위 타선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타율 0.105(19타수 2안타), 1타점, 1볼넷, 3삼진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이승엽은 승부치기에 들어간 중국전(17일)에서 끝내기 안타를 쳤을 뿐, 나머지 경기에서 보여준 모습은 기대에 못 미쳤다. 아베는 한국전에서 포수 마스크를 썼지만 이종욱의 도루를 저지하려다 2루에 악송구, 패배의 결정적 빌미를 제공하는 등 공·수에서 믿음을 저버렸다.

그럼에도 한국의 김경문 감독은 "승엽이가 부진하지만 큰 경기에서 꼭 한 방을 터뜨려 줄 것이다. 그는 변함없이 우리 팀의 중심 타자다"며 이승엽의 활약을 믿는다. 아베 역시 노련한 데다 지난해 이승엽이 요미우리에서 부진하자 대신해 4번 타자 자리를 맡았을 정도로 만만치 않은 타격 솜씨를 갖추고 있다.

이승엽은 20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아시아 예선에서 일본에 1대2로 뒤지던 7회 2점 결승 홈런을 날렸고 2000년 시드니 대회 때도 일본전에서 2점 홈런을 터뜨려 7대6 승리를 이끈 적이 있을 정도로 결정적 순간, 특히 일본전에 강했다. 간결한 타격 자세를 갖춘 아베도 지난해까지 7년 통산 타율 0.285로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타자.

프로무대에서는 같은 팀에서 살갑게 지냈던 이승엽과 아베는 결승전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조국의 명예를 걸고 마주서게 됐다. 이승엽은 "일본과의 대결에서 더욱 강하게 나가야 한다"며 전의를 다졌고 아베로서도 이대로 주저앉는다면 실패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친구에게는 아픔이 되겠지만 누가 먼저 부진을 털고 조국을 결승으로 이끌지 관심이 모아진다.

베이징에서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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