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방학 끝나면 말끝 올리던 친구

입력 2008-08-16 06:00:52

난 토종 경상도 사람이다. 태어난 곳도, 다니던 학교도, 내가 몸담았던 직장도, 그뿐만 아니라 시댁조차도 경상도라 도내를 벗어난 생활이라곤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내가 배운 말이라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뿐이다. 표준어의 정의, 즉 수도권에 사는 중산층의 지식인이 쓰는 말이라고 배웠기에 난 그 정의의 언저리에도 가질 못했으니 사투리를 쓰는 건 당연하고 운명적이다.

철없던 시절 내가 제일 부러웠던 것은 방학을 이용해 서울 사는 친척집에 잠시 다녀온 뒤 서투르나마 말꼬리를 올려 서울말 쓰는 친구였다. 그 친구의 서울말은 방학이 끝남으로써 끝이 났지만 단 한마디도 비슷하게 따라서 구사하지 못한 내가 참으로 한심하게 여겨졌던 기억은 훗날 두고두고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각 지방마다 구사하는 말이 다르다. 말의 억양이나 장단, 고저는 물론이고 발음 자체도 생소해 귀를 세우고 들어도 외래어 같이 들려 엉뚱하게 해석하는 수가 많다.

경상도 말은 다른 지방과는 달리 억양이 세고 거칠다. 마치 싸우는 것 같이 시끄럽고 도전적이어서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수가 있지만 알면서도 고쳐질 수 없는 토질병(?)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매끄럽고 반질거리는 서울말보다는 거칠고 투박해도 정이 뚝뚝 묻어나는 경상도 말이야말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토종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짧은 로컬방송을 하는 요즘 난 내 방송을 일부러 듣지 않는다. 비록 3, 4분짜리 멘트였지만 투박하고도 거친 발음은 내가 듣기에도 민망해서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으면 하는 맘으로 녹음을 하고 나면 마치 죄 지은 사람처럼 얼굴이 화끈거린다. 딴에는 프로들 흉내를 내어 보았지만 설익어 군내만 풍기는 것 같아 재녹음에 들어가기도 했다.

말에도 색깔이 있는데 그것을 거부하고 다른 색을 섞으려고 했으니 오만의 극치를 보는 것 같아 여간 부끄럽지 않다. 경상도 말이 비록 질그릇 같이 거칠고 투박해도 나름의 멋이 있고 맛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긍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이영숙(영주시 휴천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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