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베이징] 과격한 세리머니가 그리운 韓 레슬링

입력 2008-08-15 08:55:49

이번 베이징올림픽부터 한국 코칭 스태프에게는 이색적인(?) 주문이 하나 전달됐다. 아무리 기쁘다 하더라도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 선수들을 껴안거나 함께 뒹구는 등의 과잉 행동을 자제하라는 것이었다. 선수와 코칭 스태프, 심판진이 지켜야할 공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만큼 그 공간을 최대한 존중하라는 의미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기도 했다.

대한체육회가 이같은 지침을 내린 것은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한국 체육의 위상을 고려한 데 따른 것이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이제 한국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도 10대 스포츠 강국의 위상에 맞게 경기장 매너에 있어서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면서 "마치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따낸 국가처럼 경기장에까지 코칭 스태프가 뛰어 들어가 같이 흥분하는 것은 보기에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12일부터 시작된 레슬링 경기는 대한체육회의 이같은 지침이 얼마나 잘 지켜지는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시험대로도 주목받았다. 전통적 효자 종목인 레슬링은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양정모가 첫 금메달을 딴 것을 시작으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까지 7회 연속 금메달 획득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그리고 금메달이 확정되던 순간마다 매트 위에서 진한 기쁨을 나누던 코치와 선수들의 다양한 모습은 올림픽 영광의 상징적 장면으로 국민들의 뇌리 속에 생생히 남아 있기도 하다.

대한체육회측은 그러나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면서 "코칭 스태프에 단단히 일러 둔 만큼 얼마나 잘 지켜지는지 두고 보자"며 경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대한체육회의 이런 기대는 그야말로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올림픽에서 금맥을 꾸준히 이어왔던 그레코로만형 선수들은 첫날 박은철(55㎏급)의 동메달을 끝으로 나머지 네 선수는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줄줄이 무너졌다. 매트 위로 뛰어 올라가느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아예 그럴 개연성이 있는 기회마저 원천적으로 사라져 버린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성숙한 경기장 매너 운운하던 대한체육회도 공연히 멋쩍은 입장이 되어버렸다. 최악의 성적을 거둔 그레코로만형 경기가 끝난 14일,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체육회의 지침을 어기더라도 차라리 금메달을 따내 매트 위에 코치와 선수가 한데 뒤엉켰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레슬링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6일부터는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박장순 현 대표팀 감독이 금메달을 따낸 후 16년간 금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있는 자유형 경기가 이어진다. 그레코로만형 선수들이 올림픽을 앞두고 언론으로부터 각광을 받는 동안 자유형 선수들은 묵묵히 내실을 다져왔다.

레슬링 종목이 언제나 그랬듯 예상외의 선수가 이번 올림픽 자유형에서도 나타나기를 기대해본다. 묵묵히 흘린 땀의 대가가 올림픽 금메달이라면 코칭스태프가 매트 위로 뛰어 올라가 지난 4년간 동고동락한 자랑스런 금메달리스트와 함께 뒹군들 또 어떠랴?

지방신문협회 공동취재단 베이징에서 노정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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