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농암종택

입력 2008-08-14 14:41:23

들뜬 여름휴가 기간이 서서히 끝나간다. 차분하게 앉아 바람과 함께 가는 세월을 논하고 싶어지는 요즘, 농암종택의 600년된 그늘을 찾아 나섰다.

회돌아가는 낙동강마저 잠시 쉬어가는 곳, 농암종택. 1370년 무렵에 지어진 농암종택이 있는 이 마을은 안동 도산면 가송(佳松)리.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는 마을이라니, 이름부터 매력적이지 않은가. 농암종택을 찾아가는 길 자체도 절경이다. 마을 어귀 낙동강변에는 하늘의 기운이 산을 뚫고 강물을 흐르게 했다는 고산 협곡과 고산정(孤山亭)이 자리하고 있다.

농암종택은 안동문화의 절정을 보여주는 곳. 이처럼 아름다운 집이 있었나 싶다. 청량산과 가송리 협곡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은 단애와 더불어 한폭의 그림같은 풍광을 완성한다. 그 오랜 세월 서로를 벗해온 집과 물, 바람이 어우러져 무언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듯하다.

오래된 문설주에 기대본다. 서늘한 나무의 기운은 깊은 울림을 준다. 600년의 세월 앞에서 우리의 고민은 얼마나 한시적인가.

종택 앞 평상에 앉으면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흰 모래사장, 검은 절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풍경 자체로 일상에 지친 나그네에게 큰 쉼표를 전해준다.

굽어보면 천 길 강물 돌아보니 만 겹 청산,

열길 티끌 세상에 얼마나 가렸는가.

강호에 달 밝아 오니 더욱 무심하여라.

-어부단가 5장 가운데 2장-

농암 이현보(1467~1557)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이 집에서 농암 선생의 시구를 음미해본다. 연산군 이후 고향에 내려와 이 풍경에 젖어 영남의 강호(江湖)문학을 열었던 옛 시인의 마음이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

종택은 2천여평의 대지 위에 사당·안채·사랑채·별채·문간채를 둔 본채와 긍구당·명농당 등의 별당으로 구성돼 있다. 긍구당은 1350년 최초로 이 집을 지은 이헌이 지은 건물이며 명농당은 1501년 농암선생이 귀거래(歸去來)의 의지를 표방하고 지은 집으로, 벽 위에 귀거래도를 그렸다.

농암종택이 위치한 이 마을은 농암 선생 뿐만 아니라 퇴계 이황, 이육사의 숨결이 서려있다. 퇴계 선생은 이 길을 따라 청량산을 오르며 시를 남겼고, 시인 이육사는 이 길목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근처 이육사 생가와 퇴계 선생 종택도 위치하고 있다.

400년 전 퇴계(1501~1570)가'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극찬한 길이 이 농암종택 뒤로 이어진다. 백운지교에서 미천장담·경암·학소대·농암종택·월명담·고산으로 이어지는 6km의 강변길은 퇴계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퇴계 예던길'로 불리우는 이 길은 퇴계가 열세살 때 숙부에게 학문을 배우기 위해 퇴계 태실에서 청량산까지 걸었던 오십리 낙동강길이다. 노년에는 청량산에서 도산십이곡을 지었다. 어디선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유유히 걷고 있는 선비의 환영을 본듯 하다. 이 곳 농암종택은 일반인에게 개방돼 사전 예약하면 숙박할 수 있다. 농암종택(www.nongam.com, 054-843-1202)

-고택체험 가능한 곳-

♠ 봉화 만산고택

봉화 춘양면에 자리잡은 만산고택은 1878년 지어진 가옥으로, 11칸 규모의 긴 행랑채 사이로 난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을 사이에 두고 '口'자형이다. 도산서원장을 지냈던 만산 강용 선생이 지었으며 경북도 민속자료 제121호로 지정된 곳이다. 정면 11칸짜리의 별당 행랑채인 칠류헌이 아름답고, 겹층으로 쌓은 육중한 용마루는 고택의 품위를 더해준다. 054)672-3206.

♠ 안동 수애당

납북된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수애 류진걸 선생이 세운 고택. 1939년 건립돼 조선시대 후기 건축양식을 감상할 수 있다. 춘양목으로 지은 고택의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하다. 5칸 규모의 솟을대문이 명문가의 기품을 느끼게 해준다.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054)822-6661, www. suaedang.co.kr

♠ 청송 송소고택

'덕천동 심부자댁'고택으로 불리는 청송 파천면의 송소고택은 조선시대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린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호박골에서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동에 이거하면서 지었다고 전하는 것으로, 1880년경에 건립됐다. 크고 화려해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054)873-0234,

-주변 가볼만한 곳-

♠ 오천유적지

성균원생 김효로가 처음으로 터를 잡은 뒤 광산김씨 예안파 후손들이 50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집성촌. 원래 장소는 낙동강가에 접한 곳이었지만 안동댐 건설로 현재의 장소로 옮겨왔다.

이 때문에 원래 마을의 모습은 짐작하기 어렵지만 각종 한옥 건물들이 오밀조밀 모여있어, 한눈에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유적지의 대표적인 문화재 탁청정은 1541년 김수(金綬)가 지은 가옥에 딸린 정자로, 개인 정자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곳 광산김씨 예안파 집성촌에는 오래된 가문의 역사 만큼이나 많은 1천여점의 고문서서와 3천여권이 넘는 소장 서적들도 함께 보관돼 있다. 우리나라 고택의 아름다움을 집약해놓은 마을로, 잘 알려지지 않아 조용하고 고택의 멋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 도산서원

퇴계 이황 선생을 향사(享祀)하는 도산서원이다. 퇴계 선생은 1561년에 도산서당을 건립, 학문을 연구했는데 선생이 타계하자 문인들의 발의에 의해 서당이 있던 자리에 서원을 건립했다.

서원 안에는 약 400종 4천여권의 장서와 장판 및 이황의 유품이 남아 있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도 소수서원·숭양서원 등과 더불어 정리대상에서 제외됐다. 선조는 도산서원이란 현판을 사액하였는데 그 편액은 당시의 제1인자라고 손꼽히던 명필 한호(韓濩)의 글씨다. 도산서원 앞에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강 건너편에는 시사단(試士壇)이 있는데, 안동댐 수몰로 송림은 없어졌지만 강과 어우러져 좋은 경치를 선사한다.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로 가다가 남안동 나들목에서 내려 안동에 진입한 후 봉화방면 35번국도를 탄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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