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숲을 돌려주세요."
대구 북구 복현2동 금호강변의 야산에는 은행나무 군락지가 있다. 대구에서는 보기 드물게 은행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는 탓에 주민들이 '은행숲'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대단위 아파트 단지 뒤편에 있는 유일한 숲이어서 주민들에게는 소중한 쉼터였다.
그러나 올 3월부터 은행나무숲은 크게 훼손됐다. 12일 오전 숲을 찾아가니 군데군데 나무들이 나이테를 훤히 드러낸 채 잘려나가는 등 주변은 엉망이었다. 사방에는 버려진 나무들로 어지럽혀 있었고 나무의 잘린 부분은 흙과 풀 등으로 교묘하게 가려져 있었다. 누군가 벌목 사실을 감추려 했던 흔적이다.
잘려나간 나무들은 모두 230여 그루. 그 중에는 지름 20cm가 넘는 것도 많았다. 전체 숲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1천500여㎡(약 500평)가 훼손됐다.
기자와 동행한 영남자연생태보존회 정제영 총무는 "은행나무들이 이 정도 굵기로 자라려면 보통 20∼30년 이상 걸린다"고 했다.
이 은행숲은 자연녹지여서 벌목을 하려면 구청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구청 측은 올 초부터 "누군가 나무를 몰래 베고 있다"는 민원을 접수하고도 뒷짐만 져왔다. 영남자연생태보존회가 공문을 보내고 대책을 촉구하자, 뒤늦게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인근에서 20년간 텃밭을 일구고 있다는 주민 김모(55)씨는 "올 초만 해도 나무들이 울창했고 경치도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누가 왜 나무를 잘랐을까? 주민들은 인근에 아파트 단지가 생기고 도로가 나기 위해서는 이곳에 나무가 없다면 땅의 형질 변형이 좀 더 쉬울 거라는 생각에 나무들을 조금씩 잘라낸 게 아니겠냐고 추측했다. 구청 관계자도 "개발 목적으로 나무를 자르지 않았겠냐"고 귀띔했다. 실제로 은행숲은 강변에 자리잡아 전망이 아주 좋았다.
한 주민은 "올해 초 북구청에 민원을 넣으니 '우리가 어떻게 일일이 다 신경을 쓰고 간섭을 하느냐'는 대답을 듣고 황당했다"고 전했다.
구청 측은 현재 은행숲 훼손에 대해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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