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베이징] "펠프스 잡도록 박태환 놓아둡시다"

입력 2008-08-13 08:50:39

"인성을 버릴까봐 걱정이다. 자신의 나이에 맞게 나간다면 올림픽 3관왕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나이가 어린 만큼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길 바란다." 한국 수영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박태환의 스승 노민상 감독이 꺼낸 말이다. 박태환의 공식 기자회견이 열린 12일 베이징 시내 코리아 하우스에서 노 감독은 회견 말미에 조심스레 이야기를 했다.

베이징올림픽 수영 자유형에서 금 1, 은메달 1개를 따내며 한국 체육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지만 박태환의 나이는 이제 갓 19살. 그 나이다운 순수함은 기자 회견에서도 잘 나타났다. 금메달과 은메달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은메달은 애국가가 안 나오더라"고 대답하는가 하면 피나는 훈련을 어떻게 견뎠느냐고 묻자 "고통스럽긴 했지만 피는 안나더라"며 때묻지 않은 미소를 지었다.

박태환은 또 "금메달은 내게 아직 과분하다", "나보다 내 훈련 파트너가 되어준 선수들이 더 고생이 많았다"는 말을 몇 차례 반복할 정도로 겸손함도 갖췄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는 "400m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아직 마이클 펠프스(미국)처럼 정상에 섰다는 느낌은 없다. 세계 톱 클래스로 인정받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훈련할 것"이라며 흐트러짐 없는 모습도 보여줬다.

문제는 앞으로다. 올림픽이 끝나고 귀국하면 그는 국민적 영웅이 되어 있는 자신의 위상을 실감하게 될 것이고 주변에서는 이런 그를 가만히 놓아둘 리 없다. 각종 TV 오락·연예 프로그램은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돋보기 들이대듯 할 것이고 기업들로부터 CF 제의도 엄청나게 들이닥칠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 또 이날 기자회견에서 "헤드폰을 끼고 있었는데 무슨 노래를 들었느냐"는 일부 스포츠지 기자들의 시시껄렁한 질문이 노리듯 박태환과 이성 연예인을 묶는 스캔들 만들기에도 상업성 짙은 언론들이 나설 것은 뻔하다.

문제는 이런 주변의 움직임들이 19살의 어린 나이인 박태환을 본연의 자세에서 벗어나게 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천재적 소질로 촉망받던 스포츠 스타가 어느 순간 국민들의 뇌리에서 사라진 예는 굳이 구체적 이름을 거론하지 않아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제 박태환이 국내로 돌아가면 우리 국민들이 할 일은 박태환을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우상이던 그랜트 해켓(호주)을 가뿐히 넘어선 이 19살 청년은 이제 '수영 황제' 펠프스를 잡아보겠다는 굳은 의지로 더욱 자신을 채찍질하게 될 것이다.

"박태환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나도 모르겠다"는 노 감독의 말처럼 이 '무한대 능력'의 청년을 한국 체육의 자산으로 소중히 키워갈 지, 그저 베이징올림픽에서 반짝하고 사라질 '1회용 선수'로 만들지 그 몫은 우리 국민들에게 달려있다.

베이징에서 지방신문협회 공동취재단 노정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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