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촌서 팜스테이 변신 주도 역할
생면부지의 길손에게도 끼니때가 되면 '같이 먹자'며 숟가락을 권하는 후덕한 문경 인심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폐광으로 석탄산업 경기는 잃었지만 다시 관광산업으로 부활하고 있는 문경의 어제와 오늘. 주흘산 자락 한 작은 산촌마을이 흥청거리던 광산촌에서 을씨년스러운 폐광촌으로, 다시 사람이 찾아오는 웰빙 관광농촌으로 변신하면서 30여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한 이장의 이야기는 '관광문경'의 성공 비결을 엿보게 한다.
"아이구 이렇게 더운데. 얼른 들어 오이소." 문경읍 지곡리 모싯골 마을 이장 박성률(48)씨가 대문간 밖으로 쫓아 나오듯 반긴다. 마을을 둘러치고 있는 주흘산 그늘 때문인가. 폭염으로 온 천지가 지글지글 끓는데도 유독 이 마을은 바람이 시원하다. 폐광촌 분위기를 털어내고 다시 옛 활기를 되찾게 된 것은 4년전 팜스테이 마을(mositgol.com)로 변신하면서부터. 주흘산 높은 산자락 아래 옹기종기 모인 마을 모습은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유럽의 알프스 마을보다 더 아름다운 마을로 만들어 볼 작정입니다." 5대째 고향 지키미로 살고 있는 박 이장. 팜스테이로 마을에 활기가 돌면서 마을 가꾸기에 다시 용기를 얻었다. 당장 손익을 따지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알프스 마을처럼 될 것으로 굳게 믿는다. 이곳에서는 주민 20여가구가 박 이장처럼 마을을 찾는 농촌체험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새마을지도자가 돼 마을 일을 보기 시작한 박 이장의 경력은 올해로 18년째. 새마을지도자 10년에 모두 28년 동안 마을과 함께 살아 온 '마을 지키미'다. "그땐 새마을지도자가 이장보다 더 파워가 있었어요. 허허허…." 마을 일을 위해 받은 새마을교육 수료증이 장롱 서랍 2개에 가득하다. 팔순 아버지도 원래 이 마을 새마을지도자였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60년대부터 20년 동안 마을 초가를 다 벗겨낸 장본인이다. 그래서 2남 2녀 중 장남인 박 이장은 대를 이어 마을 일을 맡아보는 셈. 대구에 사는 누님 근례(58)씨와 누이 진주(43)씨, 공주에 사는 동생 성화(38)씨도 팜스테이 고객으로, 친구들을 마을로 데려올 때마다 고향집 홀아버지를 뵙는 게 진짜 더할 나위 없는 부수입이라며 웃었다.
얼음물에 채워 둔 수박을 내왔다. 한입 무니 입안이 얼얼하다. 이 마을 지하수는 얼음물처럼 차가워 수박을 물에 채워 두기에 그만이다.
모싯골에는 꿩 노루 멧돼지가 함께 살고 중태미(버들치)와 다슬기가 개울에 지천이다. 여름밤 개구리 울음소리 가득한 모싯골은 도시민들이 그리는 꿈 속 고향마을 그대로를 펼쳐 보인다.
"멧돼지요? 사과나무 가지를 마구 부러뜨려 놓으면 참 속상하지요. 그렇지만 딱히 방법이 없으니 그냥 멧돼지도 먹고 사람도 먹고…." 박 이장은 야생동물과도 같이 산다고 마음 먹는 게 편하다고 했다.
"오십이 다 된 제가 우리 마을에서 제일 막내라요." 그러니 팜스테이 손님맞이엔 항상 마을 경로당이 주축이다. 농한기 내내 술마시고 화투놀이하던 노인들이 박 이장의 성화에 못 이겨 마을 꾸미기에 나서면서 마을 모습은 확 달라졌다. 황토한증막 1동과 황토민박집 1동을 지었다. 미니천문대·디딜방아·테니스장·족구장·정자도 마련하고 산채단지도 조성했다. 농산물 판매장도 만들었다. 연둣빛 호두나무 열매가 익어가는 주흘산 산자락에서 난 청정 무공해 농산물이 주요 팔거리다.
해가 저물고 땅거미가 깔리는데도 마을자랑을 더 이어가려는 듯 수박을 안주 삼아 맥주병을 땄다. "술은 지고 가라면 못 해도 먹고 가라면 하루종일도 마다 않는다"며 그는 말을 이어갔다. "한증막 이용료는 5천원이고요, 황토민박집은 하룻밤에 17만원, 30명은 너끈히 잘 수 있지요. 벌꿀 뜨기, 전통두부 만들기, 황톳길 건강산책, 들길 뛰놀기도 할 수 있지요."
석탄합리화사업이 시작되기 전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모싯골은 지금의 두배인 80여가구가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초교생만 해도 3천명. 당시는 '개도 만원짜리가 아니면 물고 다니지 않았다'는 탄광촌 활황이 이어지고 있던 때라 시장통에도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룰 정도로 경기가 대단했다.
박 이장도 당시엔 탄광일을 했다. 석탄을 탄광에서 문경역으로 나르는 역출차를 운전했다. 당시는 모싯골 주민 대부분의 생업이 탄광일이고 농사는 부업이었다. 탄광사고가 잇따르던 그 시절, 거의 한달에 한번꼴로 사고가 났다고 한다.
어릴 적 탄광사고로 졸지에 아버지를 잃고 마을을 떠난 이웃집 친구가 너무 그립다는 박 이장. 엄마 손에 이끌려 울면서 도시로 간 그 옛 친구가 다시 제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 모싯골을 찾아와 함께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꿈꾼다. 그렇게 될 때를 기다리며 마을을 더욱 더 정성껏 꾸며 놓겠다는 게 순박한 그의 바람이다.
문의(010-6571-8310).
문경·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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