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출간된 '보험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진실'의 저자이자 보험소비자협회 대표인 김미숙(41)씨를 만났다. 서울 마포에 자리 잡은 한 오피스텔이 거대 보험사를 상대로 다소 버거울 수도 있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 김 대표의 사령부다. 그는 지난 총선 전 각 정당에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의서를 보냈고, 그 결과를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2시간 남짓한 인터뷰 시간 동안 그는 쉼없이 말을 했다. 어떻게 그 많은 보험 지식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돼 있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보험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기자로서는 수차례 비슷한 질문을 다시 하곤 했지만 그녀는 친절하고 인내심있게 설명해 주었다. 그녀가 쓴 책에서 '보험 가입을 악마와의 계약'이라고 표현했다. '돈도 안 되는' 보험소비자 운동을 줄기차게 펼치는 당찬 대한민국 아줌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 역시 보험 가입자들을 속여왔다.
-보험의 실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1995년 2월에 XX생명에서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했어요. 새로 나온 연금보험 상품 덕분에 보험시장이 아주 호황을 누리던 때여서 나갔다 하면 계약을 한 건씩 체결해 왔죠. 당시에는 낸 보험료의 5배 정도를 돌려주는 상품이라고 알았고, 또 그렇게 강조하면서 가입자를 모았습니다. 배당률이 떨어져도 2.5배는 주겠지 생각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가입을 권유했어요. 그러다가 2000년에 우연히 제가 판매했던 보험상품에 관한 신문기사를 봤는데 알고 있던 내용과 너무 달랐습니다. 팀장이나 대리점 관계자의 말은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본사에 전화를 걸었죠. 기사 내용을 따져물으면서 '보험의 속'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입자와 보험설계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던 비밀을 알게 된 거죠. 저는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어도 수많은 가입자를 속인 셈이 되는 거죠."
-곧바로 보험설계사 일을 그만두고 보험소비자협회를 시작한 건가요?
"아니에요. 보험의 실체를 알아야겠다고 다짐한 뒤에 계속 영업을 했어요. 내부를 알려면 그 안에 있어야 하니까. 인터넷을 통해 '보험맹 탈출'이라는 글을 쓰기 시작했죠. 문맹을 깨치면 세상이 보이고, 컴맹을 벗어나면 세상이 넓어지죠? 보험맹을 탈출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일을 하다 보니 보험영업이 제대로 될 리가 없죠. 한 달에 한 번 실적을 올려야 하는데, 결국 다른 사람 명의로 보험에 가입해놓고 내 돈으로 보험료를 냈어요. 억지로 실적을 채워넣은 거죠. 당시에는 공부하느라 정말 밤도 많이 새웠어요.
-자기 돈까지 써가면서 소비자보호운동을 하는 이유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데요?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그때마다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제 팔자인 것 같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고. 보험 관련 제도나 법이 바뀌는 등의 일이 생기면 반드시 제 눈에 보이고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어요. 2, 3년 전에 국회에서 심부름센터를 양성화하겠다면서 가칭 '민간조사업법'을 만들려고 했죠. 대수롭지 않은 법처럼 보였는데, 조항 중에 보험 관련 내용이 있더군요. 지금은 보험회사 직원도 함부로 질병정보 등 개인신상 자료를 함부로 조사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법에는 아무런 자격이 없는 사람도 피보험자의 사망사고나 후유장애 등에 대한 조사권을 준다는 거예요. 전면에 내세운 것은 심부름센터 양성화지만 결국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무시무시한 법이죠. 결국 국회의원 사무실을 쫓아다니면서 부당함을 호소한 끝에 입법을 무산시켰죠."
◆국민건강보험을 살려야 보험 피해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보험사기를 막으려면 그런 조사원도 필요하지 않나요?
"가령 교통사고 환자를 생각해보죠. 보험사는 피해자들이 보험료를 노리고 병원에 드러눕는다고 말합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보험금을 받았을 때 누가 가장 이익이냐를 따져보면, 대부분 의료기관이 먹습니다. 이밖에 정비업자, 부품업자가 챙길 것이고 나머지 아주 적은 액수만 피해자가 받습니다. 피해자가 병원 돈 벌게 하겠다고 내 몸 대주고 생계까지 포기할까요? 극히 일부의 대형사고를 제외하고는 그러지 못합니다. 보험사 이권 때문에 환자는 치료 시기를 놓치게 되고, 결국 이 사람은 교통사고 환자가 아니라 국민건강보험 환자가 되는 겁니다. 보험료는 민영보험사에 실컷 넣고 치료는 건강보험으로 받는, 바꿔 말하면 민영보험사가 국민건강보험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겁니다. 이런 것이 진짜 보험사기죠."
-그래도 조금 나은 민영보험을 택하고 싶을 수도 있는데, 그런 보험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과 비교해 볼까요? 건보는 누구나 죽을 때까지 한번은 혜택을 봅니다. 해마다 보험료를 내고 의료비 형태로 돌려받습니다. 건보는 보험지급률, 즉 거둬들인 보험료 대비 의료비(보험금) 지출이 96% 이상입니다. 사업비는 3.1%밖에 안 됩니다. 하지만 민영보험은 지급률이 60%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20%밖에 안되고, 만기지급이나 중도지급분을 뺀 실제 사고시 보험금 지급률은 5%밖에 안 됩니다. 민영보험사의 사업비는 10조~20조원에 이릅니다. 건보는 보험료 100원을 내면 180원을 돌려주지만 민영은 절대 그렇게 못합니다. 자기가 이익을 다 먹어버리니까 그렇게 돌려줄 수가 없죠. 참고로 우리 국민들은 전액 무상으로 의료혜택을 누릴 수 있는 돈을 부담하고 있습니다. 2007년 기준으로 건보료가 13조원, 손해보험이나 생명보험에 내는 돈이 108조원이었습니다. 민영보험에 내는 돈 일부만 건보로 돌려도 국민들은 100% 무상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래도 갑작스런 사고, 질병에 대비해 보험에 들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일단 보장기간을 길게 하면 안 됩니다. 80세 만기는 의미가 없어요. 정해진 금액을 80세가 돼서 받아야 한다는 뜻인데, 화폐가치가 없는 돈을 왜 받습니까? 보험사로서는 보장기간을 길게 할수록 좋습니다. 그래야지 사업비 부과액을 높일 수 있거든요. 그만큼 낸 보험료에서 더 떼어간다는 뜻이죠. 최대한 보장기간은 짧게 하고, 보험료 납입기간도 거기에 맞춰야 합니다. '80세 만기로 보장하는데 20년만 보험료를 내라'는 것은 내가 80세가 될 때까지 내 돈을 만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만약 10년 만기 보험을 든다면, 10년 만기에 5년 (보험료) 납입이 아니라 10년 만기에 10년 납입을 택하라는 겁니다. 즉 분산해서 길게 내라는 뜻입니다. 월 보험료는 작아지겠죠. 가장 나쁘게 보험에 가입하는 조건이 일시납입니다. 보험료 1천만원을 일시에 내면 500만원으로 깎아주겠다고 선전합니다. 보험료는 한 달치만 내도 똑같은 보장을 받습니다. 왜 보험사에 목돈을 미리 줍니까? 나중에 내야 할 보험료를 미리 냈다고 더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보험사로부터 뒤를 조심하라고 협박도 받았다.
-민영보험사 입장에서는 참 미울 텐데요, 협박이나 회유는 없었습니까?
"제가 무슨 얘기까지 하느냐 하면, 오히려 보험사가 제 보디가드를 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누군가 공명심 때문에 저를 해칠 수도 있겠죠. 그러면 보험사 다 죽어요. 제가 다치면 보험사가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요. 실제로 협박을 받은 적도 있어요. 모 보험사 앞에서 집회를 하는데 심사부 직원들이 나와서 뒤가 두렵지 않으냐며 회칼 이야기까지 꺼냈습니다. 오히려 지나가던 행인이 그 말을 듣고 다시 돌아와서 무슨 말을 하느냐며 따진 적도 있습니다. 다만 아이들(고2·초교 6년)은 저더러 좀 바보같다고 말하죠. 엄마는 왜 돈도 안 되는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그래도 한 달에 100여건 상담이 들어오는데, 그만큼 제가 할 일이 많다는 뜻이겠죠. 2006년 11월부터 접수된 2천여건의 상담 중 절반가량은 보험사가 잘못을 인정해서 해소가 됐습니다."
-보험소비자협회는 다른 수익 창출 수단이 없는 걸로 아는데, 유지비는 어떻게 마련합니까?
"회원제를 하자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회비 1만원을 받는다고 해도 저는 굉장히 큰 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함부로 받지 못하죠. 회비를 받으면 뭔가를 다시 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럴 여력은 없습니다. 당분간 회원제는 안 할 생각입니다. 다만 제 돈을 내서 주로 운영하고 간간이 도움을 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월 사무실 임대료와 전기료, 통신비 등을 포함해서 100만원 이상이 드는데, 다행스럽게도 제가 작년에 낸 책이 있어서 인세를 받아서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어요. 제가 쓴 책은 이미 보험업계에서는 불온서적으로 분류돼서 쉬쉬하고 있죠. 이후에 정말 힘들게 되면 소비자들에게 사정하고 도와달라고 할 때가 오겠죠."
-앞으로 목표는 무엇입니까?
"보험소비자들은 대개 '내가 잘 모르니까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겠지'하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은 절대 금물입니다. 자기 스스로 알아서 자기 권리를 주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안 당하고 삽니다. 보험 소비자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하는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보험사 위주의 법만 있으니까 문제죠. 가칭 '보험소비자 권익침해 방지 및 처벌법'을 제정해서 거기에 보험 소비자의 권리와 의무를 담자는 겁니다. 아울러 두 번째 책도 준비 중입니다. 앞서 책이 너무 광범위해서 좀더 구체적인 보험 문제를 다룬 책을 쓸 생각입니다. 제목은 가칭 '해약으로 시작되는 재테크'랄까. 해약은 손실이라고 생각하는데 재테크가 가능하다는 시각에서 접근하는 거죠. 아울러 우리가 보험을 해약할 때 엄청난 손해를 보면서 돌려받는데, 그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요. 거기에 보험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수법이 숨어있는데. 그 돈을 돌려받기 위해서 10만명 또는 100만명 소송 원고 모으기도 진행할 생각입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msnet.co.kr
▨ 김미숙 대표는?=보험소비자협회(cafe.daum.net/bosohub) 대표이자 두 아이가 있는 평범한 주부이기도 하다. 보험업계 출신으로 보험사가 알려주지 않은 진실을 알게 된 뒤 보험소비자 운동가로 변신했다. 보험사와 보험상품의 생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신문과 TV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출연 및 기고하며 보험의 진상을 알리고 있다. 보험소비협 카페 가입자 수는 현재 약 1만5천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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