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를 이루다]싸움소 양육·훈련 전문가 변승영씨

입력 2008-08-07 14:03:02

자식처럼 키운 정성, 아들에게 대물림

"밖에서 돌아온 집안 어른이 가족들보다 먼저 살펴보는 것이 바로 소였지요. 쇠죽은 잘 먹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소가 없으면 농사를 짓기 어려울 정도였고, 소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자녀들을 시집'장가 보냈지요. 소는 가족과 같은 존재였고, 그 집안의 가장 큰 재산이었습니다." 청도 각남면에 있는 청도공영사업공사 경영사업팀의 변승영(58) 반장. 93마리에 이르는 싸움소를 사육'조련하고 있는 그는 "소는 우리 민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고 강조했다. 1999년부터 청도군 요청으로 싸움소 사육'조련을 맡고 있는 변 반장은 소와 더불어 평생을 보낸 주인공이다.

"청도 풍각이 제 고향이지요. 돌을 지나기 전에 집에서 키우던 소의 고삐를 잡고 놀 정도로 어려서부터 소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소의 등을 타고 노는 것도 재미가 있었지요. 어렸을 적에 우리 집 소가 모심기를 하다 지치면 할머니가 술을 빚어 소에게 먹였던 게 지금도 기억 납니다."

군대를 다녀온 후 변 반장은 본격적으로 싸움소 사육'조련에 뛰어들었다. "예전에는 싸움소라고 해서 싸움만하는 경우는 없었어요. 평소에는 농사 일을 하다 추석과 같은 명절에 한번씩 싸움을 시켰지요. 70년대에는 청도'진주'마산 등지에서 소싸움 대회가 열렸는데 집에서 키우던 소를 끌고 대회에 참가했어요." 당시의 소싸움대회는 지금처럼 큰 상금을 걸지 않았고, 조촐한 상금과 함께 소싸움대회를 위해 울타리를 쳤던 광목(무명 올로 서양목처럼 폭이 넓게 짠 베)을 나눠줬다는 것.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3위 안에 들 정도로 소싸움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는 게 변 반장의 얘기다.

청도공영사업공사에서 키우는 93마리의 싸움소를 포함, 40여년 동안 변 반장의 손을 거쳐간 싸움소는 수백마리에 이른다.

"싸움소라고 해서 따로 혈통이 있는 것은 아니지요. 이르면 생후 7개월, 늦으면 생후 24개월의 소 가운데 싸움소로 키울만한 녀석을 고르지요." 싸움소로 대성할 소는 송아지때부터 다른 소와 다르다. 눈이 작고 눈두덩이 두꺼우며 목이 길어야 싸움소로 '간택'된다. 변 반장이 가장 애착을 갖고 키우고 있는 칡소 '칠성이' 경우 4년 전 고령도축장에서 도축되기 직전 변 반장의 눈에 띄어 싸움소로 변신했다. '칠성이'는 전국소싸움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등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이다.

싸움소와 함께 한 변 반장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소는 '칠성이'와 '번개'다. 나이가 19살인 '번개'는 청도공영사업공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싸움소. 사람의 나이로 치면 팔순에 가깝다. "김해에서 '번개'를 사왔지요. 90년대는 '번개'의 전성기였어요. 체중이 700kg에 불과한 '번개'가 자신보다 100~150kg 더 나가는 소를 이길 때엔 관중석이 들썩들썩했지요. 왕년의 씨름 선수인 손상주 선수가 이봉걸 선수를 이기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되지요. 전국대회에서 다섯 차례나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싸움소로 명성을 날렸어요." 격렬한 싸움의 후유증 때문에 '번개'는 관절염 등 몸이 성하지 않다. 변 반장은 "앞으로 청도소싸움장이 상설 운영되면 그 앞에 번개의 동상을 세우는 것도 한번 고려해볼만하다"고 얘기했다.

싸움소와 동고동락을 하다보니 변 반장은 수의사 뺨 칠 정도로 소에 대해 훤하다. "소는 언제나 귀가 따뜻해야 하지요. 귀가 차가우면 상태가 안좋다고 보면 틀림 없어요. 쇠죽을 잘 먹지 않을 경우에는 혓바늘이 생겼는가를 살펴보고 따줍니다. 다리에 침을 놓기도 하지요." 우리 선조들이 소를 치료하던 전통 방식도 매우 유용하다는 게 변 반장의 귀띔. "소싸움을 하다 뿔에 받혀 피부 상처를 입으면 그 소의 똥을 바르면 상처가 잘 낫지요. 또 격력한 뿔싸움으로 머리에 피가 나거나 상처를 입었을 때에는 사람의 오줌으로 뜸질을 해주면 효과가 있습니다."

현재 전국에서 사육'조련 중인 싸움소는 1천마리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전국 규모의 소싸움대회는 한해 10개에 불과, 그 문이 좁다는 게 변 반장의 지적. "서울에서 열리는 소싸움대회는 없죠. 서울의 큰 운동장에서 소싸움대회를 열면 어르신들에게는 어렸을 적의 추억을 되돌아보게 하고, 청소년이나 젊은층에게는 큰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인기를 끌 것으로 봅니다. 또 앞으로 청도소싸움장이 상설화하면 싸움소를 사육'조련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청도는 관광객을 유치하는 등 큰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몸값이 1,2억원을 호가하는 싸움소를 잘 키우기 위해 일부에서는 개소주 등 귀한 것을 먹이기도 하지만 청도공영사업공사에서는 예산이 넉넉하지 않아 다른 방안을 동원하고 있다. "산에서 나는 인동초와 칡, 소태나무 등을 구해 싸움소에 먹이지요. 자연에서 구한 보약이어서 싸움소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싸움소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고깃소로 일찍 출하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 거세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그렇다보니 싸움소로 키울만한 송아지를 고르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집에서 싸움소 5마리를 직접 키우기도 하는 변 반장은 아들(28)에게 싸움소 사육'조련을 대물림하고 있다. "사람과 소의 임신기간이 거의 비슷해요. 그만큼 인간과 가까운 동물이 소라는 얘기도 될 수 있지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싸움소와 고락을 같이할 생각입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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