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로봇의 전원을 끄지않고 인류가 떠나버렸다면?
물고기, 자동차, 생쥐, 장난감, 눈 한 대 달린 괴물과 책상 위의 스탠드.. 이들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면, 대걸레나 장갑, 부엌칼, 선인장은 왜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될 수 없겠는가. "애니메이션의 예술은 캐릭터가 무엇을 하느냐에 관한 것이지 그것이 무슨 말을 하느냐에 관한 것은 아니다" 라고 믿는 사람 (토이 스토리의 존 라세터) 이 회사에 있다면 더 더욱이나.
픽사가 돌아 왔다. 드림웍스가 북경 올림픽에 맞추어 팬더춤을 추며 안젤리나 졸리와 성룡까지 가세한 호화 성우진으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면, 픽사는 여전히 무명의 성우들과 눈 두 개만 달랑 달린 고물 로봇에 생명의 입김을 불어 넣음으로서, 애니메이션의 창조주임을 자임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화려한 스타의 목소리와 사람들이 원하는 무협 액션 장르, 사람들이 바라는 동물 캐릭터로 승부하려는 드림웍스와 달리, 픽사는 오히려 점점 더 우주 끝으로 가버려서, 사람들이 모르는 목소리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상상력,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무생물 캐릭터로 승부수를 던진다.
그런데도 놀랍게, 그 모든 게 가능하다. 이 미치광이 회사에서는.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설레임이 단단한 금속의 물체들 사이에서 살며시 기어 나온다. 단지 잠망경 같은 눈 두 개 달린 로봇에게서 사랑이란 감정이 무엇인지 한 수 배울 수 있게 된다.
서기 2100년, 청소용 로봇 월 E는 쓰레기더미로 변한 지구에서 혼자 남겨져서, 끊임없이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가고 있다. 쓰레기 더미에서 물건을 모으며 점차 인간의 마음을 가지게 된 로봇. 사람들은 청소용 로봇들만을 남겨둔 채 우주로 대피해 버렸고, 이제 700년이 지났지만, 그 많은 청소용 로봇 중에 월 E 혼자 남아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픽사의 은근한 블랙 유머의 칼날은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질 않는다. 뿌연 먼지 폭풍에 휩싸인 거대한 쓰레기 산과 황폐해져 버린, 생명의 흔적 한 점 (결국에는 연약한 식물의 이미지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없는 버려진 지구. 인간 없는 지구의 모습이 주는 경악스러운 황량함.
이후 월 E가 갑자기 지구상에 나타나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첨단 로봇 이브의 뒤를 쫒아 찾아든, 거대한 노아의 방주 같은 액시엄 호의 묘사는 더 충격적이다. 우주선 속의 인간들은 먹는 것, 일하는 것, 모두 로봇이 처리해 주어 완전히 뚱보가 되어 버린 채 화상으로만 소통을 한다. 일종의 인공 천국으로서, 액시엄 속의 미래인간들은 패스트푸드와 자동차에 길들여진 킹사이즈 어메리칸의 미래이기도 하다. (이 액시엄 호를 만든 회사의 이름이, BNL 즉 바이앤라지, 즉 '큰 것을 사라'는 의미이니, 이것이 과연 미국에 대한 풍자가 아니면 무엇일까)
이러한 측면에서 '월 E'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동용 영화가 아니라, 더욱 음미하고 지켜 봐야 하는 성인용 SF물에 가까워 보인다. 특히 인간보다는 각종 로봇들의 개성이 더욱 인간적이고, 결국에는 인간을 통제하는 로봇에 둘러쌓인 낙원-디스토피아의 모순은 이 애니메이션의 뿌리가 미키마우스 보다는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나 '웨스트 월드'에 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한다.
그러니 이 필자, 픽사의 열혈팬으로서, 이렇게 말하고 싶을 수 밖에. '니모를 찾아서'에서 픽사는 바다를 찾아 내었다. 그리고 '월 E'에서는 그 대양을 우주로 확장시켰다. 아니 어쩌면 픽사 자체가 거대한 애니메이션의 우주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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