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파킨슨병 투병 이영자씨

입력 2008-08-06 09:07:26

▲ 어머니 이영자씨의 식사를 아들 이성준씨가 돕고 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머니 이씨는 반공기 정도씩 하루 여섯차례 밥을 먹는다. 하루에 일곱번 약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어머니 이영자씨의 식사를 아들 이성준씨가 돕고 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머니 이씨는 반공기 정도씩 하루 여섯차례 밥을 먹는다. 하루에 일곱번 약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다리 아프다. 다리 좀 펴 줘요."

겨우 뗀 입으로 자신의 몸을 펴달라는 여인에겐 말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보였다. 심하게 떨리는 손은 보는 사람까지도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하루에 한시간 정도는 이동할 수 있어요"라고 했지만 기어다니는 정도였다. 방향을 트는 데도 진땀을 뺐다. '손가락 하나 꼼짝하기 힘든 정도'라는 말이 딱 맞았다.

이영자(66·여)씨가 갑자기 쓰러진 건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여름이었다. 몇년 전부터 머리에 울긋불긋한 반점이 생겨 이상하다고 여기던 터였다. 병원비를 따로 쓸 여유가 없어 결국에는 쓰러지고서야 병을 알았다. 손발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파킨슨병이었다.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질환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아들 이성준(39)씨는 6년째 어머니를 간호하고 있다. 다니던 회사도 그만뒀다. 자신을 키우기 위해 파출부 일까지 해온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그런 아들도 어머니 병간호를 하던 중 쓰러졌다. 이후 벌써 3년째. 근육에 마비가 오고 현기증이 일면서 주저앉는 일이 잦다. 병원에서는 '만성간염'이라고 했다. 생계비를 벌어 보려 목욕탕, 신문보급소 등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하는 일마다 사흘을 넘기지 못한 이유였다. 병원에서는 정밀검사를 받아보라고 하지만 MRI 촬영 비용이 없어 발길을 돌렸다는 아들. 이런 몸을 이끌고도 여전히 그는 일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방 한쪽에는 생활정보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어머니를 돌보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찾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이런 아들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자신이 몸을 움직이면 아들의 고생을 덜 것이라는 생각에 힘을 써보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맘대로 되지 않는 몸에 짜증을 부리고 울어도 보았지만 아들은 묵묵히 어머니를 간호하고 있었다. "네가 안 아파야하는데…"라며 어머니는 끝내 울음보를 풀었다. 울기조차 힘겨워 마음대로 울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아들이 안았다.

만성간염 때문에 자신도 충분히 쉬어야 하지만 어머니 간호를 위해선 그럴 수가 없다. 몸의 방향을 바꿔주지 않으면 욕창이 생기기 때문이다. 자다 깨다를 반복해야 한다. 초기에는 주로 약물을 사용하지만 나중에는 대부분 약효가 떨어져 부작용을 겪게 되는 파킨슨병. 어머니는 스스로 대소변 조절을 못한다. 자궁이 밑으로 10㎝가량 빠져 있어 누워서 지내지만 바로 눕지 못해 그마저도 힘겹다. 화장실을 갈 수 없어 기저귀를 착용해야 한다. 기저귀값만 한달에 10만원 정도. 모자의 한달 생계비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월 58만원이 전부다.

그래도 아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수술로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지만 병원에서는 '뇌심부자극술'을 권하고 있는 상태. 몸속에 전기자극기를 삽입, 운동기능을 향상시키는 치료기법으로 병의 진행을 중단시키거나 늦춰 보행과 일상생활이 나아질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역시 돈. 의료보호 1종 대상이라도 이 시술을 위해서는 3천만원가량의 비용이 필요하다.

"저를 키우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한 어머니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돼 돈을 들이지 않고도 요양시설에 어머니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어머니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아들. 그리고 아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어머니. 어머니가 잠시 눈을 감은 사이 겨우 선풍기 바람을 느낀 아들도 눈을 감았다. 모자에게 잠시나마 '피곤'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매일신문사입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