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부터 지금까지 여덟차례 사진전을 열었던 정순재 베드로 신부가 여덟번째 포토에세이를 출간했다. '어져 내일이야 임두고 갈듸 업셔라(홍익포럼)'는 질병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우리 이웃의 삶을 감싸안아 담고 있다.
정 신부는 그 자신 췌장암과 폐암을 이겨낸 사람이다.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그가 쉬지 않고 사진 찍고 글 써온 것은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됐다.
"좋은 말씀도 많고 좋은 글도 많습니다. 예수님 말씀도 옳고 공자님 말씀도 옳습니다. 그러나 말과 글로 사람의 슬프고 아픈 삶을 이야기하는 데는 막힘이 있었어요.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는 영상언어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 신부는 1976년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그 사진은 주제가 분명했다. 그는 녹음이 짙은 산과 곡식 익은 들, 푸른 하늘과 단풍 곱게 든 산을 찍지는 않았다. 그는 언제나 사람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의 발걸음은 나환자, 정신병동 환자, 뇌성마비 환자, 빛을 뿌리고 간 사람들 앞에서 멈췄다. 그는 인간의 삶을 테마로, 사람이 타고난 슬프고 고통스러운 운명과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담았다.
정 신부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환자의 사진도 찍었다. '마지막 숨'을 내쉬는 사람의 코앞까지 카메라를 들이밀기도 했다.
정 신부의 사진은 슬프고 불편하다. 사진 속 사람들은 절규하거나 일그러지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표정조차 지을 수 없는 얼굴들이다. 정 신부는 그것을 '정면보기'로 설명했다. 사진은 에둘러 설명하지 않으며, 사람의 삶을 정면으로 보여준다는 말이었다.
정 신부는 "외면한다고 우울함과 슬픔이 사라질까요? 산과 들, 누드 사진도 아름답지만 인간의 심금을 울리는 사진이어야 합니다."
그는 동행한 사진기자에게 훈계(?)를 아끼지 않았다. "사진은 머뭇거리면 안 됩니다. 바로 파고들어야 합니다. 망원렌즈를 쓰는 사람은 비겁합니다. 바로 코앞까지 파고들어야 합니다. 준비하고 기다린 후에, 찰나의 순간이 오면 놓치지 말고 잡아야 합니다."
정 신부는 올해 77세다. 큰 수술을 두 번 받았다. 숨이 차면 우황청심환과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는다고 했다. 그래도 힘들 때는 가만히 누워 있는다고 했다. 몸이 그런 형편이라면 이야기 나누기도 어려울 것 같았지만 정 신부는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그가 그처럼 많은 사진을 찍었던 것도, 그처럼 많은 전시회를 열고 책을 펴냈던 것도, 힘이 없고 아프다면서도 정열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인간을 향한 애정' 때문이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사진·윤정현인턴기자
▶정순재 베드로 신부는=1932년 대구 출생. 1961년 사제서품. 경북 의성 칠곡 태전 경산 고산 용성천주교회 주임신부 역임. 은퇴 후 제주도 포항에서 집필 작업. 1977년부터 서울과 대구에서 모두 여덟 차례 사진 전시회. 사진집 2권, 포토에세이 8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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