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저리 클럽/최인호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소설가 최인호(63).
'별들의 고향' '고래사냥' '겨울나그네' 등 대중의 코드를 날카롭게 포착한 소설로 70년대를 풍미한 작가다. '최연소 신춘문예 당선' '최연소 신문소설 연재' '작품이 가장 많이 영화화된 작가' 등의 타이틀은 그의 화려한 문학적 이력을 가늠하게 해준다.
아무런 정보 없이 읽기 시작한 이 책은 당혹스러웠다.
여섯 명의 악동들이 싸우고, 사랑하고, 방황하고, 그리고 꿈을 키워가는 성장드라마다. 다분히 '고교 얄개'와 같은 이야기다. 얄개시대, 어떻게 보면 '시한 만료'된 이야기 아닌가.
버스에서 만난 여학생 하나쯤을 마음속에 넣고 가슴앓이를 하는 17세 소년들의 들썩이는 감정과, '미성년자'라는 낙인이 주는 불안감 등 과거진행형의 스토리와 에피소드들이 너무 평면적이다. 거기다 현재의 정서와 소통되지 않는 '옛날 옛날에' 식 나열이 '작가'를 몇 번이나 확인하게 했다. '최인호 장편소설'. 고교 2년에 신춘문예에 당선돼 한때 '천재작가'로 이름 높던 그가 맞다.
알고 보니 이 책은 35년 전인 1973년 출간된 '우리들의 시대'가 원전이다. 당시 대표적인 청소년 잡지 '학원'지에 연재된 소설이다. '최인호'라는, 예순이 넘었지만 아직도 유효한 그 이름이 발굴해낸 35년전 소설이다.
최인호는 '내 순수의 끄트머리에서 학창시절의 추억을 평생 남기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속에 새기듯 써내려간 것이다'고 서문에 쓰고 있다.
주인공 동순을 비롯해 여섯 명의 얄개가 있다. 혼자보다 뭉쳤을 때 더 용감해지는 법. 빵집에서 실컷 먹고 돈도 안 내고 도망 나오거나, 침을 찍찍 뱉으며 억지 불량기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속은 순수하고, 착한 아이들이다.
누가 사랑의 열병으로 앓으면 여학생에게 연락해주고, 혼날 때도 같이 혼나고, 공부할 때도 같이 공부한다. 그러면서 고교 3년을 보내고, 학력고사가 다가오면서 서로 부쩍 큰 것을 확인한다.
최인호는 당시 청소년 잡지라는 점을 감안해 철저하게 눈높이를 낮추었다. 35년 전 시간적인 차이에서 오는 신파적인 문장이나 또래들 사이의 극존칭 등 일부 문장을 수정했다.
까까머리에 교복을 입고 다닌 7080세대들을 위한 향수의 학창시절 이야기들이다. 여학생의 뒤를 밟아 그 주소로 몇 번이나 편지를 썼다가 찢었던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는 낭만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소설이 연재된 것이 1972년부터 1973년 초까지로 대 히트작 '별들의 고향'과 연재 기간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호스티스 경아를 주인공으로 한 '별들의 고향'은 '자유부인' 이후 최대의 화제작이었다. '경아, 오랜만에 같이 누워 보는 군/아, 행복해요 더 꼭 껴안아 주세요'라는 대사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별들의 고향' 원고를 옆으로 밀어놓고, 다시 건강한 얄개들의 학창시절을 쓰는 작가의 색다른 모습이 오버랩되어 웃음이 나온다.
35년 전 이 책이 출간됐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의 문학적 연대기를 소개하는 글에서도 이 작품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단 한 줄의 과거 정보도 없이 마치 신간처럼 펴낸 것은 오해를 받을 만하다. 440쪽. 1만2천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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