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타려고 기다리다 눈에 '놈놈놈'이라는 글귀가 들어왔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란 영화의 제목이다. 그 글귀를 보니 예전에 큰아들(고3)의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 선생님은 자신의 친구 A씨 이야기를 했었다. 방학을 끝내고 방학숙제 검사를 받던 날, 담임 선생님이 A씨의 일기장을 보고는 노발대발했다고 한다. 물론 A씨는 불려가서 엉덩이가 불이 날 만큼 몽둥이 찜질을 당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실컷 A씨를 때리다 잠시 몽둥이를 놓고 왜 그렇게 썼냐고 물어봤단다. 그랬더니 A씨는 방학 내내 하루종일 논 것밖에 없어 일기장 가득히 놈을 썼다고 했다. 그것도 아주 커다랗게, 한 페이지에 하나씩 '놈!, 놈!, 놈!'이라고.
방학 내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마음껏 놀아보는 것은 어쩌면 요즘 학생들의 소원일지도 모른다. 꽉 짜여져 움직이던 일상에서 벗어나 방학만이라도 남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질릴 때까지 해보는 것도 집중력을 기르는 좋은 방법이다. 놀고 싶어하면 온종일 놀게 놔두고 실껏 논 뒤에 남은 느낌은 어떠할지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또 평소 꼭 하고 싶었던 한 가지를 선택해 꾸준히 하게 한 뒤에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느껴보게 하는 것도 교육이라면 교육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조카 녀석은 한문을 노트 한권 가득 써오라는 숙제를 받았단다. 마음이 여린 이 녀석은 감히 숙제를 안 해 가진 못하고 방학하는 날부터 숙제가 많다고 끙끙대고 있단다. 그 옆에 배짱 두둑한 여동생이 "오빠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정말 놀고 싶으면 숙제하지 말고 몸으로 때우면 되잖아. 어떻게 되는지 경험도 할 겸 말이야"라며 부추기지만 그렇게 하질 못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아들은 방학을 맞아 집에 오면서 국궁의 활과 화살을 들고 내려왔다. 공부하는 틈틈이 꼭 연습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활쏘기를 익히는 것을 '습사'라고 한다면서 한수 가르쳐 주듯 으쓱해하는 아들의 모습이 무척 신선했다. 화살이 과녁에 명중했을 때 그 손끝의 느낌은 정말 뭐라고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면서 말이다.
또 한 친구는 방학 동안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 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하루 8시간 넘게 공부를 하고 있다. 노력한 만큼 점수가 오르면 좋겠지만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정말 열심히 공부해 보았다는 경험만으로도 보람있는 방학을 보낸 것이라 생각된다. 다른 한 친구는 필리핀으로 사랑의 집짓기 봉사활동을 떠났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가슴 가득 보람을 담아올 그 아이의 자신감에 찬 얼굴이 기대된다.
방학에는 '평소에 못했지만 평소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을 하나씩 해보는 것은 어떨까. 필자는 지금도 방안 가득 책을 늘어놓고 배 깔고 엎드려 책 보다 잠들곤 했던 학창 시절 여름방학이 그립다. 빗소리처럼 들리던 매미 소리를 아련히 들으며 어설픈 잠 속에서 꿈도 꾸고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펴던 그 때의 여유를 다시 부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명희(민사고 1학년 송민재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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