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대구시의 철학과 비전

입력 2008-07-29 08:30:38

지난 한 주 대구시에 난데없이 철학(?) 바람이 불었다.

22일 열린 시민·사회단체와의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한목소리로 대구시의 정책 추진에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한 것이 신호탄. 단체 관계자들은 "시가 철학과 원칙 없이 현안을 처리하다 보니 시민들에게 지지는커녕 이해받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김범일 시장과 2년 만에 만난 자리에서 내놓은 의견이었다.

대구시와 정책간담회를 25일 갖기로 한 대구의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이에 앞서 대구시의 철학 빈곤을 때리고 나선 것도 예상치 못했던 일. 간담회를 앞둔 심경을 묻는 본지와의 인터뷰(23일자 보도)에서 의원들은 "대구시가 현안사업에 매몰돼 이를 관통하는 철학이 없다. 대구를 어떤 도시로 만들지에 대한 비전도 없다"고 비판했다.

과연 그런지 한 번 살펴보자. 대구시가 제시한 비전과 발전전략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금세 찾을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는 우선 왼쪽 위에 대구시의 로고가 눈길을 끈다. 'New Start New Daegu Colorful DAEGU' 머릿속에 와서 박혀야 하는데 해석부터 쉽지 않다.

그 아래로 대구시의 비전과 정책을 소개하는 코너. 누르면 '희망의 도시 일류 대구'라는 비전 아래 '지식경제자유도시 건설, 경제활력도시 실현, 정주 명품도시 창조'라는 발전전략이 눈에 들어온다. 역점 추진시책으로 '글로벌 지식경제자유도시로의 힘찬 도약, 활력 넘치는 경제도시 실현, 정주 으뜸 명품도시 창조, 미래를 열어가는 문화 창조도시 조성' 등이 줄지어 서 있다. 모두 좋은 뜻인 듯한데 막연하기 짝이 없다.

사전에 경고사격을 했기 때문인지 25일 정책간담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저마다 철학과 비전 문제에 대해 포화를 열었다.

이해봉 의원은 "대구의 비전을 글로벌 지식경제도시로 맞췄는데 글로벌은 우리나라 모든 도시가 가려는 방향이고, 지식은 시민들이 이해하기 힘든 분야인데 어떻게 가겠다는 거냐"라고 따졌다. 박종근 의원은 "인천 같은 도시들과 경합하려면 차별성을 가져야 하는데 새우젓 장사처럼 남들 장사하는데 뒤따라 다니면서 '나도' 하는 식은 곤란하다"며 비아냥까지 퍼부었다.

잇따른 비판 때문이었을까. 김범일 시장이 간부회의에서 '글로벌 지식경제자유도시'라는 표현을 예로 들며 "시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바꿔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비판에 대한 김 시장의 동의 여부를 떠나, 점검은 그 자체로 좋은 일이다.

기왕에 모두의 진정을 담아 市政(시정) 철학을 새로 다질 분위기라면, 철학과 다소 거리가 먼 듯한 생각도 한둘 보태고 싶다.

먼저 대구시 한 전직 관료의 얘기. 그는 "글로벌이니 패션이니 컬러풀이니 지식이니 뭐니 하며 알지도 못하는 표현들에 고개를 갸웃거린 지 벌써 몇 년이 흐르다 보니 비전이나 전략에 대해서는 시민들이 관심을 잃은 지 오래"라며 "용어 하나부터 시민들 중심으로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한 실무자의 얘기도 귀기울일 만하다. 그는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무료 환승할 수 있도록 한 게 김 시장이 취임 후 2년 동안 가장 잘한 일이라는 평가가 많은데 곱씹어볼 일"이라며 "10년 뒤 20년 뒤 대구가 무엇을 먹고살지 고민도 해야겠지만 과연 지금 시민들의 현실에 무엇이 필요한지 챙기는 게 더 시급하다"고 했다.

김재경 사회1부 차장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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