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송아지 팔고 사운 꿀맛 수박

입력 2008-07-26 06:05:08

새벽부터 엄마가 나를 깨우셨다. 송아지를 팔러 장에 가시는 아버지를 따라갔다 오라 하신다. 어미 소를 몰고 가야 송아지가 따라가기 때문에 뒤에서 송아지를 잘 몰아서 가는 일을 내가 해야 했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10리 길을 걸어갔다. 송아지는 팔려 가는 제 신세도 모른 채 어미 소를 따라 잘도 걸었고 어린 나는 송아지를 뛰다시피 따라가야 했다.

우시장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송아지 흥정에 들어갔다. 아버지를 따라 처음 온 우시장은 낯설고 신기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밀고 당기는 흥정 끝에 송아지를 팔았다. 송아지 판돈을 품 속에 잘 갈무리하신 아버지는 나를 옷가게로 데리고 가시더니 내가 보아도 너무 예쁜 원피스를 하나 사 주셨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직접 옷을 사 주시는 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너무 기쁘고 놀라웠다. 송아지 판 돈이 생겨서 기분이 좋으신 지 아니면 어린 내가 먼 길을 따라 온 것이 대견해서 그러셨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원피스를 선물 받았다는 게 너무나 기뻤다.

옷가게를 나온 아버지는 과일 전에 가시더니 수박도 한 덩어리를 사셨다. 일년을 지나도 과일 한번 먹기 힘든 때였는데 그 귀한 수박을 사시다니! 내가 생각해도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수박을 쇠등에 매달고 10리 길을 되돌아와야 했다. 수박이 쇠등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떨어질 듯 떨어질 듯 하면서 잘도 매달려 있다.

원피스를 하나 얻은 데다 집에 가면 수박을 먹을 생각에 나는 기분이 들떠 발걸음이 가뿐했다. 하지만 새끼를 떠나 보낸 어미 소는 집으로 오는 내내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송아지와 헤어진 시장 쪽을 돌아보며'음매 음매'하고 울던 어미 소의 슬픈 눈망울을 잊을 수 없다.

집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나는 언니들에게 원피스를 자랑했다. 언니들은 모두 부러운 듯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아버지가 내게 원피스를 사 준 것에 대해 믿지를 않으셨다. 그리고 아버지가 들고 온 수박을 보시더니 웬 수박이냐면서 의아해하는 눈으로 아버지를 쳐다보셨다. "내일이 복날이라서 하나 사 왔어"

우리는 그 수박을 맛있게 먹었다. 엄마는 흡족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셨다. 여지껏 살아오면서 아버지가 수박을 사 오신 일이 없었다. 손에 무엇을 사 들고 오신 적이 없었다고 한다. 물론 내게 원피스를 사 준 일도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그때 일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수박을 먹으면서 웃던 얼굴들. 하늘하늘 알록달록 원피스는 내가 가장 아꼈고 내가 태어나면서 여지껏 아버지가 자식에게 옷을 사 준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김두선(대구 수성구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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