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들 거래단위 '유로화'로 변경 잇따라
지난 2001년 미국 심장부를 강타한 9·11 테러. 2002년 1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이라크를 이란 및 북한과 함께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2003년 3월 미국은 이라크를 응징하겠다며 '이라크의 자유(Freedom of Iraq)'라는 작전명 아래 바그다드 남동부 등에 최첨단 병기로 융단폭격을 가하면서 이라크전이 시작됐다. 미군 117명, 영국군 30명, 종군기자 등 민간인 1천200여명이 전사했다. 이라크군 1만3천여명이 포로로 잡히고, 최소 2천300여명의 이라크군이 전사했다.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와 독재정치를 끝내고 민주주의를 심겠다며 시작한 이라크전. 하지만 대량살상무기는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고 이라크는 여전히 불안하다. 미국이 아무리 그럴듯하게 미화해도 전쟁의 이유는 군산복합체와 석유회사의 탐욕이 빚어낸 비극이라는 사실은 국제사회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다소 엉뚱하게도 '달러 패권' 때문에 이라크전이 벌어졌다는 시각도 있다. 아니 엉뚱하다기보다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는 스토리다.
실제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지난 2000년 11월 자국산 원유 수출거래의 계약 단위를 달러에서 유로로 바꾸었다. 후세인의 이런 결정 이후 이라크는 2003년까지 3년간 유로화 가치가 달러대비 17%나 상승하는 덕분에 상당한 부대수입을 올렸다. 이같은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에 미국은 전쟁과 후세인 처형으로 복수했다는 것. 실제로 미국은 후세인 제거 이후 원유 거래 단위를 곧바로 달러로 전환시켰다. 원래 1973년 닉슨 대통령이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발표한 '닉슨 쇼크' 이후 달러는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될 처지였지만 1974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OPEC(석유수출국개발기구)간 경제협력공동위원회를 만들면서 '달러=원유'라는 등식이 성립돼 국제간 거래의 기축통화로 자리잡게 됐다.
이후 '달러 패권'에 불만을 품은 산유국들이 줄곧 불만을 제기했지만 이라크전 이후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시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근원지는 바로 이란이다. 지난 2006년 3월 영국에서 발간되는 중동관계 전문지인 '미들 이스트(The Middle East)'는 이란의 핵 개발을 둘러싼 미국과의 갈등의 근본 원인을 '달러 패권'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정작 미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핵이 아니라 석유를 무기로 내세운 이란의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 이란 정부는 이란원유거래소(IOB)를 설치한 뒤 이곳의 거래 단위를 달러에서 유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OPEC 회원국 중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두번째 원유 생산국인 이란이 IOB를 신설해 원유뿐 아니라 천연가스, 석유제품 등에 대한 거래를 유로로 하겠다는 것은 달러 패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이란은 지난해 7월부터 일본에 대해 원유 대금을 달러화로 받지 않겠다고 선포했고, 이후 12월부터는 모든 나라에 이를 적용했다. 지난 2월에 드디어 문을 연 이란원유거래소는 유로화를 결제통화로 지정했다. 미국의 이란 공격설은 과거 이라크전의 전례에 비춰볼 때 단순한 위협으로만 볼 수 없는 형편인 것이다. 이란의 미사일 발사 시험으로 국제 원유가격이 폭등세를 보였다가 최근 미국이 이란과의 대화를 재개하겠다고 발표하자 다시 폭락세로 돌아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남미의 산유국인 베네수엘라 역시 미국이 보기에는 '눈엣가시'다. 지난 2001년 주러시아 베네주엘라 대사는 자국의 모든 석유 판매는 앞으로 유로로 거래될 것이라고 말했고, 1년 뒤 베네수엘라에서 쿠데타가 발생해 반미를 주창하던 차베스 정권이 쫓겨났다. 당시 쿠데타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하지만 민중봉기 덕분에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고 우고 차베스는 다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지난 2006년 베네수엘라 정부의 외환 보유고에서 달러와 금의 비율은 95%에서 1년 만에 80%로 떨어졌고, 유로화 비중은 같은 기간 15%로 급증했다. 이런 와중에 남미의 양대 경제대국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오는 8, 9월부터 양국의 무역거래 결제 수단을 달러 대신 양국 통화로 바꾸기로 최종 합의했다. 달러를 대신해 브라질의 헤알(Real)화와 아르헨티나의 페소(Peso)화를 쓴다는 것. 지난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교역 규모는 250억달러(한·일간 교역 규모는 827억달러)에 그쳤지만 양국간 통화 장벽이 완화되면서 올해는 최소 300억달러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이들 나라에 제재를 가하기는 힘들 전망이다. 무엇보다 이들 나라는 주요 산유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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