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프리즘] 대구 연극배우들의 영화 나들이

입력 2008-07-25 06:16:07

▲ 영화
▲ 영화 '잘못된 만남'에서 수염을 기른 조폭 두목 금수를 연기하는 연극배우 박현순씨.

대구 연극배우들의 영화 나들이가 잦다.

이중옥, 권혁, 박찬규, 박재홍, 김수정 등 신예 연기자들이 최근 개봉한 영화 '잘못된 만남'에 출연했다. 이들은 '만화방 미숙이' '허브로드' 등 대구산(産) 연극에 주축을 이루는 연기자들이다.

지난해 20년 경력의 중견배우 김미향씨가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주인공 신애(전도연)에게 신앙의 빛을 제시하는 약사이자 김 집사 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대구의 연기자들이 이처럼 대거 영화에 출연한 것은 처음이다.

정영배 감독의 '잘못된 만남'은 학창시절엔 삼각관계로, 군대에선 선임과 후임병이라는 지독한 악연으로 평생 앙숙이 된 두 남자가 15년 만에 다시 만나면서 벌어지는 티격태격, 좌충우돌을 그린 휴먼 코미디.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간 영덕에서 촬영됐다.

이들은 시체안치소 직원(이중옥), 조폭(권혁), 축구부 주장(박찬규), 택시회사 사장(박재홍), 할머니(김수정) 등의 단역을 맡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역할이 조폭 두목 금수 역을 맡은 박현순(48)씨. 그는 사채업자로 일도(정웅인)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영덕까지 쫓아와 아들을 납치하는 악역이다.

그는 대구의 중견연기자로 2001년 제8대 대구연극협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연극배우협회 대구지회장이다.

박씨는 올해 5월 개봉된 영화 '방울 토마토'에서도 철거민 대표로 출연했다. '잘못된 만남'은 그의 두 번째 영화출연이다.

영화와 연극의 차이를 그는 "앞뒤 장면 구별 없이 찍는 것"이라고 했다. 순서대로 연기하는 연극보다, 영화는 로케장소에 따라 뒷부분의 장면을 먼저 찍기도 한다. 그래서 감정 잡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가장 큰 차이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이다. "연극은 관객과 소통하고 교감하면서 연기하지만, 영화는 기계 앞에서 하거든요." 연극에서 눈(眼)연기가 없지만, 영화에서는 수시로 클로즈업을 하는 바람에 표정연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이들이 영화에 출연한 것은 미리 캐스팅된 박씨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박씨는 정영배 감독과 20년 넘게 친분을 가지고 있다. "촬영도 영덕에서 하기 때문에 사투리에 익숙한 대구연기자들을 추천했죠."

다소 빈약한 연극무대에서 영화판으로 영역을 넓힌 것에 대해 연기자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이중옥씨는 "영화시스템을 이해하고 연기폭을 넓히는 데 좋은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방울토마토'와 '잘못된 만남'은 상대적으로 저예산에 속하는 영화다. 흥행 성적도 시원찮은 편이다.

그러나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재구성한 김진명의 소설 '황태자비 납치사건'이 오는 9월 말 촬영이 시작된다. 절반 이상을 일본에서 촬영하고, 순제작비도 70억~80억원에 이르는 대작이다.

박씨는 전체 캐릭터 중 27%, 다섯번째로 비중이 큰 수사반장 역할을 맡았다. 처음 단역에 가깝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영화의 문제가 참신한 중견연기자가 없는 것이다. 10여명의 인기있는 중견연기자들이 중복출연하고 있는 형편. 박씨는 새 얼굴의 중견연기자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연극을 그만두는 것은 아닙니다. 연극은 제 생명이죠." 그는 영화가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다. 연기력을 높이고, 영화를 통해 인지도를 높이면 더 수월하게 연극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연극 관객도 더 모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잘못된 만남'에 출연하면서도 연극공연을 고수했다. 200명의 엑스트라와 크레인까지 동원된 촬영이 그의 일정차질로 취소되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사에 수천만원의 손해를 입혀 눈총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황태자비 납치사건'에서도 많은 대구의 후배 연기자들이 캐스팅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조재현 등 영화와 TV에서 활약하는 연기자들이 대구에 오면 관객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이제 연극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종횡무진 활약하는 연기자들이 필요한 시기다. 박씨는 대구의 연기자들에게 그런 꿈을 꾸게 하고 있었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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