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경북대병원 박재용 교수

입력 2008-07-24 14:45:28

사망률 1위 폐암…맞춤진단'표적치료 연구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은 뭘까. 누구라도 주저없이 암을 꼽는다. 폐암은 이런 암 가운데서도 치명적인 질병으로 꼽힌다. 위암·간암·대장암·유방암을 포함한 국내 5대암 가운데 발생률 2위, 사망률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까닭이다.

현재 폐암의 치료 후 5년 생존율은 13%대에 불과하다. 1960년대 7% 생존율에서 겨우 6%가 늘어났을 뿐이다. 폐암 치료가 이처럼 어려운 이유는 뭘까. 폐암은 다른 어떤 암보다 조기 발견이 어렵다. 우리 몸의 폐는 조금 과장하면 운동장만큼 넓다. 암세포가 생겨도 발견하기 쉽지 않고, 그나마 증상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폐암은 보건복지부 '5대암 조기검진사업'에도 빠져 있다.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검사방법이 없고, 조기발견과 치료가 사망률을 떨어뜨린다는 연구결과도 부족해 비용 대비 효과가 제대로 검증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국내 폐암 진단·치료의 새 역사가 열릴 날이 멀지 않았다. 경북대병원 호흡기내과 박재용 교수팀이 폐암의 맞춤형 진단과 폐암 세포만을 죽이는 표적치료법 연구에 나선 때문이다. 박 교수는 경북대병원 대구경북지역암센터가 지난해 보건복지부에 신청한 '폐암의 맞춤 진단 및 표적치료법 개발' 과제의 책임 연구원으로, 조기 발견이 어려운 폐암 연구에 국비(27억원)를 지원받는 첫 쾌거를 이뤄냈다. 박 교수는 "그만큼 연구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라며 "앞으로 3년 안에 첫 결과물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했다.

박 교수의 연구과제는 '맞춤의학'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맞춤의학은 꿈의 의학으로 일컬어지는 영역이다. 내가 어떤 병에 걸릴 확률이 가장 큰 지 미리 알 수 있고, 나에게 가장 잘 듣는 약을 쓸 수 있다면 정복하지 못할 병이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맞춤 의학의 핵심은 바로 유전자다. 키 큰 아버지에게 키 큰 아들이 태어나게 마련이듯 폐암에 잘 걸리기 쉬운 유전자도 따로 있다. 흡연은 폐암 위험도를 64배 이상 높이지만 실제론 흡연자의 10~20%만 폐암에 걸리는 게 이런 이유. 같이 담배를 피워도 폐암이 걸리지 않는 사람은 유전자적으로 다른 사람과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폐암 진단이 방사선 또는 컴퓨터 사진 위주로 이뤄졌다면 이번 연구는 유전자를 관찰해 폐암 위험도가 높은 사람들을 선별적으로 검사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박 교수의 궁극적 연구 목표는 폐암 유전자에만 작용하는 표적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다. 항암제를 예로 들어보자. 20세기 후반 항암제가 처음 출현할 때만 해도 마치 암이 곧 정복될 것처럼 세상이 시끄러웠다. 하지만 항암제는 암에 걸린 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를 함께 공격하기 때문에 병을 더 악화시키기도 하고, 지독한 고통을 낳기도 한다. 일본 소비자 및 환경문제 평론가로 활동하는 후나세 슌스케가 항암제의 한계와 위험성을 강력하게 고발한 '항암제로 살해당하다' 시리즈는 한국과 일본에서 출간돼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그러나 암세포만 공격하는 항암제가 있다면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정상세포를 공격하지 않기 때문에 고통도 없을 뿐만 아니라 치료 속도가 훨씬 빨라질 게 당연하다. 박 교수는 "항암제가 너도나도 똑같은 약을 쓰는 집단 의학의 산물이라면 표적치료제는 특정한 유전자에만 반응하는 예측 의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며 "폐암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모든 항암제 개발은 표적치료제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박 교수가 유전자 치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전문 주간지 '네이처'지에서 폐암유전자치료에 대한 글을 읽은 뒤 '바로 이거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이후 박 교수는 95년 세계3대 유전자치료센터의 하나로 꼽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흉부암연구센터에서 윌슨 박사의 가르침을 받으며 폐암유전자치료 공부에 매진했다.

올해 4월부터 대구경북지역암센터장을 맡고 있기도 한 박재용 교수는 "정확한 의사보다는 인간적 의사가 되길 소망한다"며 "암센터를 통해 대구경북 시도민들이 폐암뿐만 아니라 모든 암에서 해방되는데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프로필

1984년 경북대 의대를 졸업한 뒤 91년부터 경북대병원에 재직 중. 대한암학회 선정 제5회 한국암연구재단 학술상(98년),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선정 학술상(99년)을 받았으며, 지금까지 SCI논문 25편을 포함해 모두 130여편의 논문 발표.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