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목 감아죄는 '대기업 문어발'

입력 2008-07-21 09:22:20

대기업이 지역 중소기업들의 사업영역을 무차별 잠식하면서 중소기업들이 폐업과 도산 위기를 맞고 있다.

대기업의 시장참여를 제한했던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가 2006년말 완전 폐지된 이후 대기업이 돈만 되면 뛰어드는 문어발식 사업확장으로 중소기업에 걸맞거나 일궈놓은 시장을 침범하고 있는 것.

◆두부에서 재생타이어까지

가장 먼저 대기업들의 타깃이 된 부문은 재생타이어업계. 타이어 제조 대기업인 한국타이어가 지난해 이 시장에 뛰어든데 이어 금호타이어가 시장 진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생타이어는 마모된 타이어를 일정하게 깎아낸 후 고무를 덧붙여 재활용한 타이어로 지역 중소기업 11개사가 이 시장에서 영업하고 있다.

지역 업계에 따르면 대기업들이 저가전략으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고 원자재가 되는 자사 중고타이어마저 고가에 사들여 업계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경산지역 한 재생타이어업체 관계자는 "경기침체로 수요는 감소하고 있는데 대기업마저 시장에 진입해 영세기업들은 설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시장 참여를 제한했던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가 2006년 12월말로 완전 폐지된 이후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재생 타이어 뿐만 아니라 골판지상자, 국수, 두부, 아스콘 등 한때 고유업종으로 지정됐던 업종에서 대기업의 시장 참여로 기존 중소기업들이 존폐위기에 몰리고 있다.

특히 두부시장은 사정이 심각하다. 대기업들이 두부 한 모를 더 주는 등 판촉경쟁을 벌이면서 문을 닫고 있는 중소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실제로 두부업계에 따르면 상반기에만 지역 두부업체 4, 5곳이 매출감소로 문을 닫았다. 대구지역 한 두부업체 관계자는 "매년 매출이 30% 감소하고 있다"면서 "대구경북지역 300여개 업체들은 대부분 영세해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서비스업도 마구잡이 진출

신용카드사들도 잇따라 신사업 진출을 추진하면서 중소업체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카드사들은 주력 사업인 신용판매 부문이 과열 경쟁으로 수익성이 낮아짐에 따라 VAN(부가가치통신망)과 렌터카, 여행 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삼성카드는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이르면 연내에 렌터카 사업에 뛰어들 예정이어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대구경북지역 렌터카업체들이 긴장하고 있다. 대구경북자동차대여사업조합 관계자는 "금융사들이 자금력과 영업력을 동원해 렌트카사업에 진출하면 지역 50여개 사업자들이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또 SK네트웍스의 중고자동차사업 진출이 가속화되면서 대구지역 중고차 업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대구시자동차매매조합은 대기업의 막강한 자금력과 기업 브랜드를 이용해 영세한 중고자동차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도산직전에 있는 영세한 중고차 매매업자를 죽이고 대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상행위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구시자동차매매조합은 SK그룹의 중고차시장 진출 반대 서명운동과 함께 중고차유통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불법행위에 대한 신고 접수, SK그룹 제품 불매운동 등을 벌일 계획이다.

대구경북지역 1천여개 인쇄업체들도 대기업인 한솔그룹이 인쇄업체를 인수해 인쇄업에 진출함에 따라 긴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역 500여개 인쇄업체는 '한솔그룹 인쇄업 진출 반대 서명'을 벌여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에 제출한 바 있다.

◆대안은? 사업조정제도 강화돼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고유업종으로 지정됐다 풀린 17개 업종에서 제도 폐지 후 폐업 또는 도산으로 문을 닫은 업체는 지난해 8월말 현재 97개에 달한다. 이 업종에 진입한 대기업 7개사는 시장점유율이 폐지 전 15.8%에서 20.0%로 4.2%포인트 증가해 97개 중소기업의 몫을 고스란히 가져갔다. 실제로 대기업의 점유율은 두부 30%, 어육연제품 25%, 재생타이어 10% 증가했다.

17개 업종의 중소기업 가동률은 폐지 전 68.8%에서 폐지 후 63.4%로 5.4%포인트 감소했다. 어육연제품·타올은 20% 이상 감소했고 국수·아연·알루미늄·다이캐스팅은 10~20%, 골판지상자·두부·동물약품 등은 10% 미만 등으로 가동률이 감소했다.

중소기업계는 한결같이 고유업종제도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의 사업조정제도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사업조정 신청을 한 적이 있거나 신청 가능성이 높은 업종의 협동조합 및 조합원사 184개사를 대상으로 사업조정제도의 개편방향을 설문한 결과 76.6%가 '현행보다 강화돼야 한다'고 응답했다.

사업조정제도는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의 사업개시 또는 확장으로 피해를 입게 될 중소기업의 신청을 받아 조정을 통해 2년 동안 대기업의 진출을 유보하게 하는 제도다.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될 경우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90.2%는 '대기업의 무차별적인 중소기업 사업영역의 침해가 예상된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사업영역의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사업진출 유예기간인 2년을 '폐지'(48.9%)하거나 '5년'(34.8%)으로 늘릴 것을 요구했다. 또 유예기간 중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금지원'(37.0%)과 '마케팅·생산성 지원'(25.5%)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이종목 기업협력팀장은 "정부는 사업조정제도 개편을 대기업의 중소기업 사업영역 진입규제 완화와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중소기업의 사업영역 보호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며 "대기업의 중소기업 사업영역 진출과 관련, 업종별 특성을 감안해 유예기간을 폐지하거나 최소 5년으로 연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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