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는 기 싸움이다. 포장하는 자와 벗기려는 자의 치열한 심리전. 민감한 주제일수록 이면은 감춰지고 표정은 다른 빛을 띈다. 분위기가 격앙될수록, 인터뷰이(interviewee·인터뷰에 응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궁금증이 해소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KBS 1TV '단박인터뷰'는 마치 시사 분야의 '무릎팍도사' 같다. 민감한 이슈일수록 핵심을 파고들며 상대를 자극한다. 그 전면에는 진행을 맡은 김영선 PD가 있다.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김 PD를 만났다. 사실 인터뷰어(interviewer·인터뷰를 하는 사람)를 인터뷰하는 건 부담스럽다. '선수'끼리 밑천 드러나기 딱인 탓이다. 그녀는 잘 웃었다. 김 PD는 "카메라 감독님이 '백만불짜리 미소'라고 그랬다"며 으쓱했다.
◆사람 이야기가 좋다
1997년 KBS에 입사하기 전까지 그녀의 꿈은 드라마 PD였다. 하지만 입사 직후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며 교양 PD가 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요즘에는 드라마 PD를 안 했던 것이 잘 한 선택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너무 드라마를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게 일이 되면 한 걸음 멀리서 보는 동경이나 재미가 없잖아요." 시사교양 PD로 방향을 잡은 건 탁월한 선택인 듯하다. 김 PD가 맡았던 프로그램들은 이슈의 중심에 선 것들로서 사회적 반향을 끌어냈다.
KBS 1TV '단박인터뷰'는 김 PD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지난해 5월 김홍업 전 민주당 의원을 시작으로 1년 2개월 동안 170회 분이 방송됐고 150명의 명사들을 만났다. 평균 시청률은 7%대. 딱딱한 시사 프로그램인 점을 감안하면 꽤 잘나오는 편이다. "제가 예전부터 시사 토크 프로그램을 꼭 하고 싶었어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들이 수년 전부터 인기를 끌어왔 듯이 TV에서도 토크나 인터뷰가 흐름이 될 것이라고 봤거든요."
◆카메라 앞으로 나서다
기자는 글로 말하고 연출자는 늘 카메라 뒤에 선다. 때문에 기자나 PD 중에는 남들 앞에 서는 걸 질색하는 이들도 많다. 그녀는 왜 카메라 앞에 설 결심을 했을까. "기획 단계에서 주3회 15분짜리 인터뷰 프로그램을 하자는 데까지 왔는데 '과연 이걸 누가 진행할 것이냐'에서 막히더라고요. 처음에는 못 한다고 극구 사양하다가 지금까지 취재를 하면서 쌓았던 인터뷰 경험을 살리면 새로운 것이 나올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단박'이라는 간판은 우연찮게 만들어졌다. "원래 가제는 '직격 인터뷰'였는데요. '낭독의 발견'을 연출했던 홍경수PD가 한장 한장 국어사전을 넘기며 비슷한 단어를 찾아봤데요. 그러다 '단박'이라는 단어가 들어왔는데 영어로 의미를 풀어보니까 즉시(at once), 직접적으로(directly), 현장에서(on the spot), 지체 없이(without delay) 라는 뜻이 있더라고요. 조금 촌스럽고 가벼워보일 수 있지만 잘 안 쓰이는 단어라 귀에 잘 들어올 것이라고 예상을 했죠. 덕분에 많은 분들이 저를 '단박뉴스'의 진행자로 알고 있답니다."
매주 화·수·목 3번 방송이니 제작 스케줄은 숨가쁘게 돌아간다. 매주 금요일이면 전체 회의를 통해 살아있는 이슈의 중심에 선 인물을 선정하고 아이템을 정한 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급박하게 촬영 일정이 진행된다. 급박한 이슈라도 터지면 휴일같지 않은 휴일이 되기 일쑤다. "주말에도 뉴스를 놓치면 안 되고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논의를 해야 하니까 신경을 늘 곤두세워야하죠. 요즘은 한달 정도 전화기 없이 인터넷도 안 보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단박인터뷰, 이렇게 만들어진다
-사안의 핵심을 짚는 질문은 어떻게 만듭니까?
"일단 인물을 선정하고 담당 PD와 작가가 기본적인 순서를 뽑아내요. 저는 말투에 맞게 고치거나 제 의견을 포함시키죠. 아무리 질문지를 잘 짜도 현장 상황은 늘 달라지니까 그때 그때 대응을 해야 해요. 그래서 질문을 뽑는 동안 저는 매일 밤 두꺼운 자료를 봐요. 매주 중간고사 벼락치기 하 듯. 인터뷰 중에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운동을 하고 인터뷰 전날에는 좋아하는 술도 안 마시고."
-이슈를 따라가려면 섭외가 쉽지 않을텐데요.
"저희가 출연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거의 다 안 나오겠다고 하니까 쉽지 않죠. 싸우기도 하고 빌기도 하고, 애교도 떨었다가. 그 중에서도 이명박 대통령, 한나라당 후보 경선 때였는데 아무리 전화를 해도 섭외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대전에서 열린 연설회장에 무작정 갔어요. 예고도 없이 차에서 내리는 이 후보한테 마이크를 들이댔는데 보좌관들이 와서 욕하고 난리가 났죠. 그래도 그냥 밀어붙였어요. 화장실 앞까지 따라가고 KTX 역까지 쫓아다니면서 반 협박, 반 설득을 한거죠. 결국 그 다음날 다시 정식으로 인터뷰를 했어요. "
-민감한 질문을 할때 불쾌한 반응이나 예상치 못한 반응을 하진 않나요?
"심형래 감독이 그런 경우인데 '디 워' 개봉하기 전에 학력위조 논란이 일었잖아요. 인터뷰 시작전부터 심형래 감독이 굉장히 격앙돼 있었어요. 이 분이 굉장히 감수성이 풍부하시더라고요. 학력위조 부분은 묻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에둘러 질문을 했죠. 그랬더니 벌떡 일어나서 마이크를 빼고는 안 한다고. 달래서 또 앉히고. 그 과정을 두 번 했는데 결국 인터뷰 중에 우셨어요."
-인터뷰가 사실 기싸움이잖아요. 김 PD가 기에서 눌린 인터뷰이도 있나요?
"2회 출연자가 유시민 전 장관이었는데 첫 만남을 잊을 수가 없어요. 혼자 장시간 동안 연설을 하는데 제가 완전히 말려서 질문도 제대로 못하고 그냥 강의를 듣고 왔거든요. 또 이명박 대통령. 그 분이 말을 무섭게 하거나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는 것도 아닌데 뿜어내는 독특한 카리스마가 있어요. 정말 기가 세신 분이죠. 지난해 11월 BBK 관련 질문을 하려다 몹시 헤맸던 기억이 나요. 도저히 묻지를 못하고 정말 버벅대면서. 그분의 기도 있었고 주위에서 저를 포위하고 질문 못하게 막 끼어들고 그런 상황이어서"
◆인터뷰는 기싸움이다
-중립성 시비도 많이 일던데요.
"처음에는 굉장히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내가 정말 편향적일까라는 생각도 하고. 그런데 요즘은 별로 신경을 안 써요. 일단 출연자를 선정할때부터 자격 논란이 일거든요. 조갑제씨 경우에도 출연 자체에 대한 논란으로 게시판이 도배가 됐어요. 결국 중립성 시비는 진행자의 태도를 떠나서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봐요. 기계적인 중립성은 토론 프로그램에나 필요한 거죠. 인터뷰에서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묻는 것에만 신경을 쓰면 되잖아요."
-만나기 전에 갖고 있던 이미지가 인터뷰 후에 완전히 달라진 경우도 있나요?
"조갑제씨는 섭외부터 인터뷰, 인터뷰 후의 감상이 굉장히 남달랐어요. 조갑제씨를 둘러싼 글과 설화(舌禍)가 제가 가진 정보의 전부였고 아무래도 극우의 이미지가 강했으니까요. 촛불집회 관련해서 섭외를 시도했는데 왜곡하거나 의도적인 편집을 하지 않겠다면 출연하겠다는 거예요. 깜짝 놀랐죠. 실제로 만나보니까 너무 평범하시고 조용조용 말씀하시고. 이분의 사상에 대해 동의를 하느냐의 문제는 별개로 '사람은 정말 만나봐야 아는 거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특히 끝나고 나올때 했던 말을 잊지 못해요. 제가 '방송 잘하겠습니다' 했더니 '방송하고 욕 많이 먹으세요' 그러시더라고요."
-만약 1시간이라는 시간과 살았든 죽었든 누구든지 만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누구를 인터뷰 하고 싶으세요?
"음…. 정말 그럴수 있다면 이순신 장군을 만나보고 싶어요. 왜 그렇게 고단하게 살았는지. 저는 이순신 장군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살았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거든요. 무엇이 이 사람을 그렇게까지 끝까지 집요하게 포기하지 않고 살게 했을까 하는 점. 그리고 두번째 질문은 (어느 드라마에서 묘사한 것처럼) 정말 자살한 게 맞나."
◆본격 시사 토크 프로그램 하고파
-인터뷰 말미에는 왜 늘 노래를 시키나요?
"노래에는 말로는 다하지 못한 내면의 일부가 표현돼요. 특히 나이 드신분들은 자기 인생에 의미가 있는 노래가 하나씩 있거든요. 노래를 부르는 표정에서 말로 다 담지 못하는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누가 노래를 제일 잘하던가요?
"정치인 중에는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이 인상 깊었어요. 국악을 하셨는지 '뱃노래'를 부르는데 잘 하시더라고요. 박근혜 대표는 정말 성격 그대로 너무나 곱고 단정하고 단아하게 박자 하나 틀리지 않고 불러요. 유시민 전 의원은 '무조건'을 부르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애뜻한 감정이 딱 드러나더라고요. 그 상황과 얼굴, 인터뷰 내용이 노래와 너무나 어우러져서 한편의 드라마 같았어요. 최근에는 엄홍길씨가 '떠나버린 친구에게'라는 노래를 '히말라야 눈속으로 떠나버린 친구에게'라고 개사해서 부르셨어요. 눈을 지긋이 감고 끝까지 부르시더니 우시더라고요."
-앞으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나요?
"궁극적으로 CNN의 '래리킹 라이브'처럼 TV에서 생방송으로 하는 시사토크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고발·취재 프로그램이 대세였다면 앞으로는 토크나 인터뷰, 토론 프로그램의 흐름이 될 거라고 보거든요. KBS를 대표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사 인터뷰 프로그램을 만들고픈 꿈이 있어요."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 김영선은 누구?=1974년 생. KBS 1TV '단박인터뷰' 진행자. 아나운서나 기자로 오인 받기도 하지만 그녀는 시사교양프로그램에서 잔뼈가 굵은 12년차 PD다. 역사스페셜, TV내무반, 추적 60분, 일요스페셜, 생방송 시사투나잇 등 정치·사회의 이슈 현장에서 그녀의 모습은 더욱 두드러진다. 역사스페셜로 2002년 '한국방송 프로듀서상 교양부문 작품상'을 받았고 2003년에는 연출을 맡은 '추적 60분'이 INPUT(세계공영방송대회) 시사프로그램에 선정되기도 했다. 자이툰 부대를 따라 이라크 전장을 누비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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