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독도와 權宜之計

입력 2008-07-16 10:45:28

20여년간 연구끝에 한일 고대사에 관한 책을 낸 박정화씨가 일본 지식인들의 속성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가시마 노보루라는 변호사의 경험담이다. 80년대초 일본 왕실에 대한 연구서를 출판한 그에게 저명한 일본 역사학자가 침이 마르도록 책을 칭찬하고는 "혹시 이 책을 영문으로 출판한 적이 있는가"고 물었다. "없다"고 대답하자 "그러면 걱정 없군요. 우리 학계는 당신의 학설을 무시하겠습니다"하고 가더란다.

이 일화는 영미학계의 반응에 극도로 민감한 일본인들의 심리를 보여준다. '영문으로 출판되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아니라면 무시해도 그만'이라는 일본 학계의 사대적인 자세를 꼬집은 것이다. 비주류의 견해는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풍토, 사실에 관계없이 소위 권위자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게 묵살되고 조정되는 일본 지식 사회의 속물근성을 말해준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의 사돈인 박씨는 그래서 한글판에 앞서 영문판을 미국에서 2년 먼저 출판했다고 털어놓았다.

독도를 분쟁지역화해 국제사법재판소로 몰고가겠다는 일본의 속셈도 이와 다르지 않다. 1952년 덜레스 미 국무장관은 "역사적으로 독도가 한국 영토라면 일본의 독도 편입은 무효"라고 발언했다. 이후 일본은 독도를 자기 영토로 편입하기 위해 '고유영토설'을 만들어 내는데 혈안이 됐다.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논리를 개발하고 자료를 모으고 널리 홍보해 왔다. 진실과는 상관없다. 일본이 신뢰해 마지않는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져가면 되기 때문이다. 노리는 것은 한'일 독도해역 공동개발과 같은 정치적'경제적 실속이다.

독도를 '일본 것으로 보이기 위한'일본의 노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자국 교과서뿐 아니라 국제해양기구, 지리학회, 각국의 교과서나 지리부도, 미 의회도서관 도서분류까지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억지라도 좋다. 우길 소재만 있으면 우기고 그 결과를 노리겠다'는 게 그들의 노림수다.

고수는 활을 당길 뿐 쏘지는 않는 법이라고 했다. 우리가 독도문제에 감정만 앞세우면 일본의 잔꾀에 또 당하게 된다. 일본의 지속적인 독도 도발을 우리는 權宜之計(권의지계)로 삼아야 한다. 때와 장소에 맞춰 시의적절하게 대응하라는 뜻이다. 한국에 귀화한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자기 책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일본에게 절대 당하지 말라'고.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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