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3일부터 27일, 싱가포르가 올해 첫 개최한 '국제 물 주간(International Water Week)' 행사에는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의 물산업 관련 정부·학계 관계자, 기업 대표 등 무려 8천500명이 몰렸다. 물산업을 둘러싼 최근의 변화, 기술 발전 등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그만큼 각국의 관심이 크다는 사실을 새삼 보여준 셈이다.
21C 신성장산업으로 떠오른 블루 골드(Blue Gold)를 향한 러시는 이미 시작됐다. 수자원 부족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물이 막대한 이득을 창출할 경제재가 된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누군가가 샤워를 할 때 또는 물을 마실 때마다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은 이미 뜨겁게 달아올랐다.
◆새로 짜여지는 물산업 판도
지난해 국내 최초의 '물 펀드'인 '삼성 글로벌 워터펀드'를 출시한 삼성투신운용은 지난 4일 발표한 펀드 운용보고서에서 "지난해 상반기까지 물산업분야의 인수합병(M&A)이 활발했지만 올해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환경이 좋지 않다. 하지만 세계적인 상하수도 민영화 확대에 따른 수혜를 꾸준히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보고서가 지적한 대로 세계 물시장은 글로벌기업들이 기존 물산업 전문기업들을 인수합병하면서 새로 진입, 판도가 급변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미국 GE(General Electric)와 독일 지멘스(Siemens). 이들 기업들은 관련 사업구조의 계열화를 서두르면서 물산업 제조업 분야의 주도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GE는 지난 2004년 물 정화전문업체인 이오닉스(Ionics)를 11억달러에 매입한 데 이어 2006년 막(Membrane) 분야 선도기업인 제논(Zenon)을 약 7억달러에 인수하는 등 관련 기업 5곳을 인수, 2010년 매출 100억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지멘스는 2004년 10억달러에 유에스 필터(US Filters)를 인수하면서 수(水)처리 장비부문에 진입한 뒤 7개의 수자원 관련기업을 사들여 수처리 장비제조업 전 부문에 뛰어들었다.
이 밖에 미국 최대 화학업체인 다우케미컬(Dow Chemical)은 2006년 중국 상하이에 있는 수자원 관련기업인 '저장 오멕스(Omex) 인바이런먼틀 엔지니어링'을 인수했고 3M은 필터 전문기업인 큐노(Cuno)를 사들였다.
◆11조원 한국시장 잡아라
반면 베올리아(Veolia), 수에즈(Suez) 등 기존 선두권 기업들은 수처리 제조업 분야보다는 상하수도와 산업용수 서비스업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이들 기업은 이미 한국에도 진출해 있다. 지난해 109억유로(한화 약 17조원)의 매출을 기록한 베올리아는 1999년 한국사무소를 개설한 뒤 2000년 롯데대산유화의 용수 공급계약(20년)을 시작으로 이천·청주·구미 하이닉스 반도체(17년), 금호석유화학 여수·울산 공장과 금호폴리켐 여수공장 수처리(15년)를 맡고 있다. 지난 2001년에는 삼성엔지니어링과 합작, 인천시로부터 송도·만수 하수종말처리시설 사업자(BTO·20년)로 선정돼 2005년부터 하루 10만t의 하수를 처리하고 있다. 이들 사업장의 매출은 연간 3천억원 정도에 이른다. 베올리아 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해마다 1억2천만달러의 예산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며 "3천500건에 이르는 특허기술을 통해 폐수 감소, 재활용 등을 통한 수자원 보호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올리아와 세계 물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수에즈그룹은 자회사인 온데오를 통해 상하수도 시설 설계와 하수처리 위탁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2001년 한화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 경기도 양주군 신천·장흥·곡릉 하수처리장 건설사업(20년)에 진출했으며 부산 하수도시설, 서울 수도시설에도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이 본격 개방되더라도 동남아시아, 남미 등의 국가에서처럼 이들 기업이 국내에서 단독으로 상수도사업을 벌이기는 힘들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수자원연구원 박노석(41) 선임연구원은 "한국은 이미 상수도 보급률이 높은데다 시장성이 있는 특별시, 광역시의 상수도사업본부는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춰 해외 물 전문기업의 독자적인 진입이 어려울 것"이라며 "선진국에 비해 훨씬 싼 상수도 요금도 덜 매력적으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변수, 국제표준화
세계적 물 기업의 발 빠른 해외시장 선점 공략과 함께 물 산업 시장을 둘러싼 국제 환경, 제도의 변화도 관심의 대상이다.
상하수도 서비스의 국제표준 제정을 위한 국제표준화기구(ISO) TC 224 회의는 지난 2002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열렸다. 베올리아, 수에즈 같은 다국적 물기업이 있는 프랑스 정부가 주도했지만 영국·독일·네덜란드·미국·일본 등도 자국의 표준이 국제표준으로 채택되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기술이 시장을 지배하지 않는다. 표준을 지배하는 자가 시장을 지배한다'는 말처럼 자신들의 체계를 전 세계에 상용화해야 경쟁력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상하수도 서비스 국제표준화안은 이미 지난해 11월 제정됐다. 이에 따라 한국기술표준원에서도 올 하반기 중 국내 규격을 만들 예정이다. ISO가 국내 법체계에 우선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하수도시설의 유지관리 등을 민간에 위탁하도록 할 때 표준규정을 따라야 할 수도 있다.
ISO/TC 224 워킹그룹위원장을 지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건설환경공학과 박희경(51) 교수는 "곧 제정될 국제표준보다 앞선 서비스표준을 한국 자체적으로 확립해야 국제 경쟁력을 높여 국내시장을 보호하고 아시아지역에도 우리 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에는 아직 물시장이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지만 국제표준의 영향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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