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골드 물의 전쟁] ①항금알 낳는 거위
우리 전래설화 주인공 가운데 최대의 '사기꾼'은 뭐라 해도 임자 없는 대동강물을 주인인 양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이다. 하지만 천하의 김선달도 깜짝 놀랄 일들이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다른 나라에 상하수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연간 수십조원이란 천문학적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등장했는가 하면 국내에서는 수돗물을 생수로 판매하겠다는 지방자치단체가 줄을 잇고 있는 것. 그야말로 물 관련 산업이 '물'을 만난 셈이다. 매일신문은 모든 인류의 영원한 숙명이자 21세기 최대 성장산업으로 꼽히는 물 산업(Water Business)의 현 주소와 미래를 특집시리즈를 통해 살펴본다.
■떠오르는 물 시장
우리에게 '킬링 필드'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캄보디아에 최근 한국인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졌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시장 선점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기업인들로 한국을 오가는 비행기는 빈 자리가 없을 정도다.
섬유산업·건설업·관광업이 중심이지만 근래에는 수자원 개발 분야의 국내기업 진출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인구의 8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농업국으로서 국가발전을 위해서는 수자원 이용 효율성 향상이 가장 시급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현재 '캄보디아 국가 수자원개발 종합계획수립사업'과 '크랑폰리 강 유역 다목적 수자원개발사업'을 KOICA(한국국제협력단)와 한국수자원공사가 맡고 있다. 또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2006년 시아누크빌에 첫 현대식 하수처리장을 건설했고 코스닥 상장업체인 유신코퍼레이션은 캄퐁참주(州) 바테이지역에서 홍수조절용 제방축조사업을 올 연말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특히 전선제조업체인 KTC는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시엠립지역의 상수도 서비스 공급계약을 캄보디아정부와 조만간 체결할 예정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신현석(55) 주캄보디아 한국대사는 "캄보디아는 비교적 수자원이 풍부하지만 효율적 관리가 안돼 안전한 물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는 형편"이라며 "캄보디아 물 시장에서 성공하게 되면 국내 수처리분야 기업들이 인근 다른 나라로까지 시장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캄보디아에 한국 물기업만 진출한 것은 물론 아니다. 캄보디아 수자원기상부(MOWRAM)에 따르면 프랑스·호주·일본·인도·덴마크 등이 이미 진출해 있다. 대부분 무상원조사업이지만 그만큼 개발도상국 시장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텡 타라(Theng Tara) MOWRAM 수자원관리국장은 "한국의 물분야 기술력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뒤처지지 않는다"며 "특히 문화가 비슷한 같은 아시아계라는 점도 한국기업에게는 장점"이라고 말했다.
■왜 물산업인가
물의 중요성은 연간 3모작도 가능한 좋은 기후와 충분한 강수량을 갖고도 고작 1모작에 그치고 있는 캄보디아에서 보듯 곧바로 국부(國富)와 연결된다. 국가 간의 물을 둘러싼 개발 경쟁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물 산업은 말 그대로 물을 찾거나 공급하고 또 사용한 물을 처리하는 것, 모두를 일컫는다. 상하수도, 바닷물 담수화사업, 생수 제조업이 대표적이며 특히 상하수도 사업은 전체 물 산업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가장 크다. 또 물 처리에 필요한 각종 설비 생산과 약품 제조, 기술 개발·컨설팅, 건설 등도 넓은 뜻의 물 산업으로 분류된다.
물 산업은 흔히 '블랙 골드'(석유산업)에 이어 '블루 골드'로 불린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물산업은 매년 6%씩 성장, 세계시장이 2005년 2천500억달러에서 2012년엔 4천95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또 개인이 필요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서 앞으로 30년 동안 매년 1천800억달러 이상의 투자가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와 있다. 모두 물산업의 고도 성장을 예견케 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물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물의 위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와 개발도상국의 산업화에 따른 환경오염, 인구 증가 등으로 생존에 꼭 필요한 안전한 물이 귀해지고 있는 것이다. UN은 세계 물 부족 인구가 현재 10억명에서 2025년이면 30억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해마다 500만명 이상이 수인성 질병으로 숨지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보다 안전하고 나은 삶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경향도 물 산업이 성장할 수밖에 없는 근거로 꼽힌다. 한국수자원공사 수자원연구원 신재기 박사는 "10여년 전 국내에서 생수가 처음 시판될 때만 해도 생수시장이 지금처럼 커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물을 더 이상 '물'로만 볼 수 없는 시대가 다가왔다"고 말했다.
■블루 골드 러시는 시작됐다
이처럼 큰 물 시장을 둘러싼 '물의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하지만 전 세계 물 산업은 자금과 조직, 기술을 앞세운 선진국의 몇몇 대기업이 벌써 높은 장벽을 치고 있다. 세계 10대 물 기업 가운데 9곳이 유럽 국적이다.
프랑스기업으로 물 기업 중 가장 큰 베올리아(Veolia)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100여개 국가에 진출해 1억명 이상에게 '물 서비스'를 펴고 있다. 연 매출만 15조원 이상으로 국내 전체 물산업시장 11조원보다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최근에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독일의 지멘스(Siemens)에 이어 3M, 홈데포(Home Depot) 등이 관련 기업들을 사들이며 물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국내기업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바닷물을 민물로 만드는 담수화 플랜트 부문에서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코오롱그룹은 물 산업을 그룹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아 2015년까지 관련 매출을 2조원까지 끌어올려 세계 10대 물 기업으로 진입하겠다는 계획을 지난해 밝혔다. 삼성엔지니어링과 태영·GS건설도 수(水)처리분야에 큰 관심을 갖고 있고 정수기업체인 웅진코웨이·청호나이스 등도 해외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물 관련 대표적 공기업인 수자원공사는 현재 해외에서 20여건의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유신코퍼레이션 김종갑(44) 수자원부장은 "국내 기업들이 해외시장 진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은 국내 물 산업 인프라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며 "물 산업은 IT 이후 국내 산업계에 신성장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수(海水)담수화 분야를 제외하면 아직 우리 기업의 경쟁력은 선진국에 비해 70% 정도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에 따라 급성장하는 물 시장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고부가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설계·고도 정수처리시설 등에 집중투자하는 한편 과감한 M&A 전략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물 산업은 앞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물 부족 문제를 해소하면서 수출을 통해 국가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다. 좁게는 시장개방 시대에 물밀듯 들어올 외국기업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국내산업 육성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물 산업이 미래 성장엔진으로 도약할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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