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웃는 게 남는 장사

입력 2008-07-04 09:52:41

그녀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이었다. 눈에 확 띄는 미모, 방송국 프로듀서라는 직업, 자신을 빼닮은 아들, 경제적 여유, 일에 대한 열정….

그런 그녀가 매년 하는 직장 건강검진에서 이상 소견을 받았다. 종합검진을 새로 받고 결과를 기다리던 그녀. 의사로부터는 확실한 병명을 듣지 못했는데, 간호사가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설명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항암치료를 받으시려면…."

그녀는 간호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입이 얼어붙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사람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제가 암이라니 무슨 해괴한 말씀을 하시는 거죠? 저, 겨우 서른두살이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말도 안 돼요.

부정은 곧 원망으로 이어졌다.

이게 뭐야?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내가 무슨 잘못을 그리 많이 저질렀다고? 망할 놈의 세상,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세상, 이대로 폭발해 버려라.

그 다음은 가없는 설움의 단계.

아아, 불쌍한 엄마.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슬퍼하실까? 안 돼. 엄마는 모르게 해야 돼. 아아, 불쌍한 우리 아들. 아아, 불쌍한 우리 가족….

잠을 못 자고 울기만 하던 그녀는 마침내 긍정의 단계에 도달했고, 수술대에 올랐고, 항암치료를 받았다. 3분의 2를 잘라낸 자신의 간을 치즈케이크 한 조각으로 형상화한 이미지를 대문으로 내건 인터넷 홈페이지도 열었다. 홈페이지에 올린 첫 번째 글제는, '이렇게 살면 암에 걸린다'였다. 겉보기로는 화려했으나 실상은 끔찍할 정도의 스트레스와 만성피로로 얼룩졌던 자기 삶을 돌아보고 경계하는 글이었다.

이 세상에 병을 앓았거나 앓는 친구, 친척, 가족이 한 사람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녀가 재미난 글 솜씨로 연재한 '간암 자가 진단법', '건강 지키는 법', '병원일기', '식이요법', '요양원 일기' 등은 많은 네티즌들에게 인기를 얻었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 중에서 내가 특별히 도움을 얻은 글은 '병문안 하는 법'이다. 독자를 위하여 이 글의 핵심만 소개해드리겠다. 첫째, 병문안 가서 울지 말라. 둘째, 눈물을 흘린 티가 나는 벌건 눈을 하고 병실로 들어가지 말라. 셋째, 환자보다 그대가 먼저 죽을 것 같은 심각한 표정을 짓지 말라. 넷째, 될 수 있으면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준비해 가라. 덤으로 춤추고 노래까지 불러주면 더욱 좋다. 다섯째, 아무 사전지식 없이 문병을 가서는 환자에게 병에 대하여 꼬치꼬치 캐묻지 말라. 여섯째, 그렇다고 병에 대해서 한마디도 안하는 것은 이상하니까 가능한 한 희망적인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라. 일곱째, 중간에 눈물이 날 것 같으면 화장실에 다녀오라. (단, 환자가 눈치 채지 못하게) 여덟째, 환자가 이미 알아챘다 싶으면 도망가지 말고 그 자리에서 펑펑 울라. 그러면 이미 눈물도 말라버린 환자가 그대를 위로해 줄 것이다. 환자로 하여금 그대가 자신을 피해 밖에서 홀로 울고 있다는 상상을 하게 하는 것은 일종의 고문임을 잊지 마시라.

퇴원한 그녀는 클래식기타와 재즈댄스와 명리학과 타로카드를 배웠고 사진작가로 데뷔하여 몇 차례 국제적 전시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렇게 7년을 더 살고 서른여덟 번째 생일에 숨을 거둔 그녀.

그녀에게 마지막 문병을 갔던 작년 3월 초, 피골이 상접하고 복수가 찬 그녀와 우리 친구들은 대보름 부럼을 까먹으며 한 달 치 웃음을 다 웃었다. 고백하건대 두 번째와 세 번째 유형의 문병객이었던 나는, 그래서 그녀의 글을 읽으며 몹시 찔렸던 나는, 그녀 덕분에 '병문안 하는 법' 만큼은 좀 알게 되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은 받아들이되 그 다음에는 웃는 것, 어쨌든 웃는 게 남는 장사라는 이승의 진실 또한 조금은 알게 되었으니, 친구야, 고맙다.

박정애(소설가·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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