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아름다운 퇴장

입력 2008-06-30 10:42:23

뛰어나게 지혜로운 사람에겐 남다른 점이 있다. 뛰어난 분별력과 과감한 결정, 비전,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와 인내…. 出處進退(출처진퇴)의 지혜 역시 그런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미덕의 하나다. 권력이든 재물이든 한 번 잡으면 죽을 때까지 놓지 않으려는 인간 군상 속에서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잘 알고 실천하는 사람은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지난 2006년 6월, 빌 게이츠 마이크로 소프트(MS)사 회장의 전격적 발표는 세상을 놀라게 했다. 2년 후인 2008년 7월부터 일상적 회사일에서 손을 떼고 자선단체인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업무에만 주력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게이츠 회장은 "나로선 힘든 결정이었다"면서 "내가 이런 변화를 준비함으로써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전도는 어느 때보다도 유망해질 것"이라고 했다. 'IT 황제'이며, 10여 년간 세계 최고 부자에 등극했던 게이츠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니….

그는 지금까지 여러 모양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사람들이 컴퓨터가 뭔지도 잘 모르던 1960년대 후반 열세살 때 이미 계산프로그램을 만들었을 정도의 컴퓨터 천재였다. 세계 최고 명문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으나 컴퓨터 시대를 예견, 과감하게 학업을 그만두고 20세 때 MS사를 설립했다. 서른 살에 백만장자, 서른일곱 때는 미국 최고의 갑부가 됐으며, 올해 워런 버핏에게 추월당하기 전까지 13년간 연속 세계 최고 부자의 자리에 올랐던 주인공이다. 또한 재산 대부분을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딴 '빌&멜린다 재단'에 기부, 제3세계의 질병 퇴치와 교육사업에 힘쓰는 세계 최고 자선사업가이기도 하다.

지난 27일 게이츠는 약속대로 은퇴했다. 최고 경영자로서는 아직 한창 나이인 52세. '채근담'에 이런 말이 있다. '입에 단 음식은 모두 창자를 짓무르게 하고 뼈를 썩게 하는 나쁜 약이니 너무 먹지 말고 중간쯤에서 멈추면 재앙이 없을 것이다.''세계 최고'를 달고 살아온 그는 부와 명예의 치명적인 달콤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 아닐까.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형기 시 '낙화' 중)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인다. 이젠 지구촌 곳곳에서 트레이드 마크인 노타이 셔츠 차림으로 동분서주하는 자선가 빌 게이츠를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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