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보호 1년] (상)시행 1년 '진통'만 남아

입력 2008-06-30 09:57:13

▲ 대구지역 2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대구지역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24일 중구 동성로 대백앞에서
▲ 대구지역 2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대구지역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24일 중구 동성로 대백앞에서 '비정규직철폐 대행진' 발대식을 열고 비정규직악법 철폐, 최저임금 현실화, 비정규직문제 해소 등을 요구했다. 윤정현 인턴기자

"1년만 더 일하면 되는데…."

자동차부품회사 조립라인에서 일하는 K(38·기간제 비정규직)씨는 요즘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비정규직 보호법으로 앞으로 1년만 더 있으면 '당당한' 정규직이 되지만, 회사는 여전히 별다른 언급이 없다. 몇달 전부터 회사사정이 어려워 비정규직을 정리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면서 일할 의욕조차 꺾였다. "일은 그대로인데 앞으로 다른 회사와 계약서를 써야 한다고 하네요. 회사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조립라인 일부를 용역으로 대체해 비정규직은 소속이 달라진대요. 비정규직은 그야말로 '파리 목숨'이죠."

지난해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대기업과 공공부문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된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된지 만 1년을 맞았다. 비정규직의 차별대우를 금지하고, 고용안정을 보장해준다는 법인데도 그들은 여전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정규직 전환은 꿈도 꾸지 못한 채 '무기(無期)계약'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차별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처우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짝퉁' 정규직에 머물고 있다.

◆반쪽짜리 정규직만 양산

비정규직 보호법은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과의 괴리는 여전히 크다.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면서 기업이 기간제 근로자를 무기계약 근로자로 전환하고, 필요한 인력을 파트타임이나 파견, 용역 등 간접 고용으로 전환하면서 짝퉁 정규직만 증가시켰다."

이 같은 노동계의 주장은 고용통계에서 그대로 입증된다. 법 시행 후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수는 감소했지만 비정규직 중 고용이 가장 불안정한 용역직과 파견직, 시간제 근로자는 오히려 늘어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올 3월 기준 563만8천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만5천명이 줄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은 훨씬 더 심해졌다. 법 적용을 받는 기간제는 줄이고 간접고용, 시간제를 늘린 탓이다.

2년 이상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기간제 노동자는 32만명이 줄어든 대신, 용역·파견·일일노동자 등은 8만6천명이 늘었다. 시간제노동자(1주일 36시간 미만)도 6만9천명이 늘었다. 계약기간 1년 이상 비정규직은 20만9천명 줄어든데 반해 1년 미만 노동자는 16만7천명 늘었다.

◆고용불안 여전해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 8년째 조리원으로 일하는 A(46·여)씨는 최근 학교로부터 '7월 말까지 나가달라'는 해고통지를 받았다. 학생이 줄어 조리원 수를 감축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하반기 '무기한 계약'을 쓰면서 비정규직의 설움을 벗었다는 기쁨은 1년도 채 안돼 물거품이 됐다.

"해마다 3월이면 새로 계약을 맺었어요. 그때마다 해고되지 않을까 불안했는데 결국 이렇게…."

무기계약 방침은 한때 A씨에게 정년을 보장하는 '보증수표'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상여금이나 성과급은 없었고, 근무경력도 인정되지 않았다. A씨가 지난 1년간 받은 돈은 1천만원 남짓. 예전과 그대로였다. 처음에는 '정규직이 됐다'는 것만으로 만족했지만, 실상은 허울일 뿐이었다.

지난해 7월 시행된 비정규직법은 기업이 직접 고용한 기간제 노동자들만을 보호 대상으로 하다보니 '유사' 정규직을 남발시켰다. 결국 기업들이 비정규직들에게 내밀었던 '직군분리'와 '무기계약'은 차별 해소가 아니라 차별 구조를 고착화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구노동청 관계자는 "많은 기업들이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직무 또는 직군을 분리해 완전한 정규직이 아닌 반쪽짜리 정규직을 만들어냈다. 예전에 비해 고용안정을 보장 받지만 인사체계의 이중적인 구조로 차별 요소까지 해소되진 않았다"고 했다.

민주노총 대구본부 최성택 교육선전부장은 "2년 이상 고용한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이 법은 외주화, 무기계약, 반정규직 제도 등 기업들이 법을 피할 수 있는 빌미만 줬다"라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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