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에 물든 가야산, 세상에 상생을 비추다
어르신들 말씀에 "세월이 화살 같다"는 표현이 있지요. 새삼 그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매일신문이 창간 61주년 특집으로 마련한 '상생의 땅 가야산' 연재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지막회를 쓰기 위해 이렇게 노트북을 펼치게 됐습니다. 50회에 이르는 긴 시리즈를 끝내게 돼 시원한 마음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정들었던 애인'(가야산)을 떠나보내는 것 같아 아쉽고 섭섭한 마음도 듭니다.
'상생의 땅 가야산' 연재를 시작하면서 처음에 가졌던 막막한 심정이 불현듯 다시 떠오릅니다. 산 하나를 갖고 1년이란 긴 시간에 걸쳐 시리즈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사실에 솔직하게 걱정이 앞섰지요. 이제 그 끝자락에 서니 가야산이 가진 실체를 얼마나 독자들에게 잘 전해드렸는가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옵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씀드리면 가야산의 실체를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도 전해드리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앞섭니다. 수억년의 세월을 간직한 가야산을 1년이란 짧은 시간에 조망한다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한 작업이란 변명도 해봅니다. 미처 건드리지 못했거나 소개하지 못했던 가야산의 다른 부분들은 다른 분들에게 맡기려 합니다.
글도 짧고 산 사진 전문가도 아닌, 모든 면에서 부족한 가야산 취재팀이 '상생의 땅 가야산'을 무난하게 끝낼 수 있었던 데에는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과 질책이 가장 큰 밑바탕이 됐습니다. 기사가 나갈 때마다 "산맥의 이름이 잘못됐다" "야생화 이름이 틀린 것 같다" "계곡 이름이 유래된 설명이 잘못됐다" "만수동의 위치가 이상한 것 같다"는 등 질정을 많이 해주셨지요. 또 "어디에서 보는 가야산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가야산의 이런 부분을 연재해달라"는 등의 말씀도 이어졌습니다. 그런 관심 덕분에 매일신문 인터넷 홈페이지의 '상생의 땅 가야산'에 대한 독자들의 클릭 건수가 7만여건을 넘었습니다.
엎드려 말씀드리면 잘못된 부분들은 저희 취재팀의 지식이 짧거나 많은 자료를 제대로 검토하지 못한 탓이고, 독자들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 것은 취재팀의 애살과 노력의 부족이라고 깊이 자인합니다. 앞으로 나오는 책에서는 보다 더 정확하고, 치밀하게 가야산을 조망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조금이나마 가야산의 실체를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됐습니다. 가야산과 성주의 역사를 꼼꼼하게 연구한 제수천 전 성주문화원장을 비롯한 수많은 분들이 음과 양으로 도움을 주셨지요. 묻혀 가는 가야산과 그 주변 지역의 생태와 환경, 역사, 이야기들이 지면에 소개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분들의 공입니다. '향토사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복원'이란 측면에서 '상생의 땅 가야산'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자부해 봅니다.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1년 동안 100차례가 넘는 가야산 등산과 성주, 합천, 거창 등 주변 지역에 대한 출장에서 별다른 사고가 없었던 것은 가야산 여신인 '정견모주'의 보살핌이었다고 믿습니다. 1년 전 정견모주의 전설이 깃든 상아덤에서 취재팀은 눈을 감고 머리를 숙여 무사고 산행 등을 여신께 빌었습니다. 정견모주의 큰 보살핌 덕분에 무탈하게 시리즈를 마무리하게 됐습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가야산과 그 주변 지역을 취재하면서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리를 삐기도 하고 삭정이에 다리를 찔려 피를 흘린 적도 있었지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 또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에 4~5시간씩 등산을 하는 일도 힘이 들었습니다. 가야산 일출을 촬영하기 위해 캄캄한 등산로를 올라가는 것은 정말 무서웠지요. 좋은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같은 곳을 수차례 오르는 일도 다반사였지요. 지금은 그 모두가 가슴 속에 묻어둔 추억이 되었습니다.
'상생의 땅 가야산'의 마지막 출장날, 가야산은 흰 구름에 가려 있습니다. 장마 탓에 가까이 가더라도 산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구름이 잔뜩 끼었군요. 하지만 구름 속에 모습을 숨긴 가야산은 더욱 신비로운 존재로 다가옵니다. 구름 낀 가야산을 내려가며 가야산은 어떤 산이며,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꼭 1년 전 가야산 취재팀은 이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가야산이 주는 가르침을 상생(相生)이란 화두로 풀었습니다. 하늘신 '이비하'와 가야산 여신인 '정견모주'의 화합으로 대가야와 금관가야를 연 땅이 바로 가야산입니다. 또 가야산은 그 넉넉한 산세와 후덕한 기품으로 불교와 유교는 물론 풍수지리, 산악·무속신앙의 성지(聖地) 역할을 했지요. 서로 교류하고 융합하는 상생의 덕을 가야산은 몸소 보여줬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가야산을 통해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구름 속으로 점점 사라져가는 가야산을 돌아보며 '상생'의 덕이 언제쯤 이 세상에 튼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그리고 열매를 맺을지 생각해 봅니다. 1년 전 연재를 시작할 때에 비해 지금의 세상은 상생보다는 오히려 상극(相剋)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세상사는 갈수록 혼탁스럽고 서로를 물어뜯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지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가야산은 비록 말이 없지만 '침묵의 사자후(獅子吼)'로 사람들에게 분명한 가르침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상생의 세상을 만들라고….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들의 마음에도 상생의 덕이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글·이대현기자 sky@msnet.co.kr
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사진·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가야산 지킴이-이상희 전 내무부 장관
"가야산은 민족의 명산입니다. 기암괴석과 계곡, 동·식물의 보고(寶庫)일 뿐 아니라 나라의 기쁨이나 슬픔을 함께한 큰 산이지요. 임진왜란, 한일강제병탄, 광복 때 산이 울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산이 울었다기보다는 이곳에 사는 백성들의 마음이 그러했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가야산 자락인 성주군 대가면 금산리에서 나고 자란 이상희(75·사진) 전 내무부 장관에겐 가야산에 대한 의미와 인연이 남다르다. 그는 "가야산은 우리 조상들에게 믿음을 주는 신앙의 대상이었으며,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줬다"고 강조했다.
가야산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안다고 자부한다는 이 전 장관은 가야산을 대표하는 해인사쪽과 신계용사쪽을 비교해 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해인사쪽은 소나무가 많지만 반대편인 신계용사쪽은 잡목이 우거져 있어요. 해인사 계곡은 협소하고 유속이 급하고 빠르나 옥계(포천계곡)쪽은 구배가 완만하고 폭이 넓어 굽이쳐 도는 계곡이 장관입니다. 독용산성에 핀 흰진달래, 마수폭포의 돌감나무 군락…." 마치 눈에 잡힐 것처럼 가야산의 빼어난 풍경들을 펼쳐 놓았다.
이 전 장관은 어린시절(중2) 가야산에 얽힌 추억도 소개했다. 가야산 정상에서 소풍을 마치고 담임 선생님이 알아서 내려가라고 해 우두봉에서 성주쪽 마을을 보니 발아래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였다는 것. 그래서 30분쯤 내려오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결국엔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됐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도 물이 아래로 흐른다는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목마름은 개울물로, 배고픔은 지천에 널려있는 벌똥나무(보리수) 열매로 해결했다. 지금의 아전촌 위쪽 마을로 내려오니 오전 2, 3시쯤이었다는 얘기다. 또 고교 때는 선친과 코배이재를 넘나들었으며 또 가야산 해인사 암자에서 국가고시를 준비한 남다른 추억도 갖고 있다.
그는 "이젠 가야산을 대구 등 인근 도시의 등산객이나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200~300년 전쯤으로 되돌리는 산의 생태복원 작업을 서두르자는 것이다. 소나무를 많이 심어 솔바람 소리를 되살리고, 살구 매화 등 꽃나무를 심어 맑고 청명한 개울물에 복사꽃잎이 떠내려오게 하자고 했다. "아마 10년 정도면 훼손된 자연을 살리기엔 충분한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또 무조건식 개발 통제보다는 일정한 범위 안에서 개발토록 해 사람이 살고 찾아오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야산을 성주·합천 등 인접한 주민들만의 산이 아니라 대구·경북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의 명산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자원의 보고이며 문화·생활이 살아 숨쉬는 가야산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
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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