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고물가 시대…미리 본 여름휴가 풍경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맞았지만 고속도로는 한산하기만 합니다. 예년 같으면 피서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던 유명 해수욕장도 마치 파장 분위기를 맞은 듯 조용합니다. 반면 도심 인근 계곡과 수영장 등에는 연일 피서 인파가 몰려들고 있습니다. 바닷가 횟집과 펜션들은 일년 장사를 망쳤다며 울상이고, 유통업체들도 나름대로 여름 특수가 사라지면서 기대했던 매출을 올리기 힘들어 보입니다."
7월 말~8월 초순쯤 오후 9시 뉴스에는 이런 소식이 들려올지도 모르겠다. 지금처럼 기름값이 치솟고 물가가 난동을 부린다면 여름 휴가는 여유가 아닌 고역이 될 전망이다. 미국 사람들도 집에서 휴가를 보내는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이 늘고 있단다. 우리 역시 현재 상황이라면 방에 콕 박혀서 여름을 나는 '방콕족'이나 방안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방글라데시족'이 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 올 여름 휴가 풍경을 예상해봤다.
자영업을 하는 안정훈(42)씨는 동네 친구 가족과 함께 여름 휴가를 계획하고 있다. 비용 부담이 커서 성수기를 피해볼 생각이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초·중학생 자녀들의 학원과 보충수업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워서 결국 극성수기로 꼽히는 7월 말에서 8월 초 사이에 휴가를 가기로 한 것. 일본이나 동남아 여행도 생각했지만 아무리 적게 잡아도 성수기에는 1인당 70만~80만원이 든다는 말에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어린이의 경우, 할인을 받는다고 해도 가족 8명이 움직이려면 최소한 500만원 이상은 든다는 결론이 나온 것. 안씨는 "가까운 동해안이나 다녀올까 했는데 일년에 한번 가는 여행이라는 마음에 강원도 정선과 삼척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했다.
하지만 국내 여행도 경비가 만만치 않았다. 기름값을 아끼기 위해 승합차 한대로 움직이기로 했지만 그것 역시 비용이 적잖게 들 전망이다. 당장 대구에서 문경을 거쳐 정선까지 가는 거리만 300㎞. 또 삼척까지 이동하는 데 80㎞ 정도를 합치고 이래저래 이동 거리를 따져볼 때 최소한 왕복 800㎞ 거리를 승합차로 이동해야 한다. 승합차 연비를 따져볼 때 1ℓ당 8㎞ 남짓. 얼추 계산해도 경유 100ℓ가 필요하고 기름값만 1ℓ당 2천원으로 치면 20만원이라는 돈이 나온다. 중간에 이곳저곳을 구경하느라 드는 거리는 뺀 상태인데도 이 정도 비용이 필요하다. 여기에 고속도로 통행료가 왕복 3만2천원이 필요하다. 일단 교통비만 최소 23만2천원이 든다는 결론.
숙박비는 부담이 훨씬 컸다. 극성수기인 탓에 아무리 싸게 잡아도 콘도 한채를 빌리는 데 하루 25만원꼴. 그것도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회원가로 빌린 금액이다. 8명이 하루 묵는데 그나마 싼 편이라고 위로해 보지만 결국 숙박비만 3박에 75만원이 든다. 여기에 8명이 하루 두끼만 사먹는다고 계산해도 1인당 5천원씩 계산하면 4일간 식비만 32만원이 드는 셈이다. 부식비나 시설 이용요금까지 더하면 아무리 줄여 잡아도 식비를 포함해 50만원이 든다는 결론이다. 결국 8인 가족 국내 여행에 드는 돈은 150만원가량인 셈.
직장인 이상열(39)씨는 여름 휴가 계획을 묻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자녀들 성화에 못 이겨 여름 휴가를 안 갈 수는 없지만 돈을 생각하면 걱정부터 앞선다는 것. 지난해 이씨가 동해안으로 2박3일 휴가를 다녀오며 쓴 비용은 50만원가량. 그것도 아는 사람에게 미리 부탁해서 펜션을 싼값에 얻어둔 덕분에 이틀간 숙박비를 30만원 정도로 묶어두었고, 나머지 먹을거리를 모두 미리 준비해 간 탓에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이마저도 어려울 전망이다. 작년에 묵었던 영덕 쪽 펜션은 지금도 주말이면 하루에 18만원에 이르고, 성수기에는 최소한 23만원까지 받는다는 것. 게다가 회라도 한 접시 먹으려면 4인 가족 기준으로 6만원은 줘야 하기 때문에 교통비를 포함해 이래저래 따져보면 70만원은 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씨는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해변에 텐트를 치고 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예 휴가를 포기하자니 너무하다는 생각도 든다"며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쥐꼬리만한 봉급은 그대로여서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동해안 상인들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 울진에서 횟집을 하는 오모(52)씨는 "지난해에 비해 손님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보면 된다"며 "주말인데도 하루 매상 10만원 올리기가 쉽잖다"고 말했다. 특히 기름값이 오르면서 울진, 영덕 등지의 상인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주말 나들이 손님이 아예 뚝 끊긴데다 간혹 오더라도 매상이 크게 오르지 않는다는 것. 울진군 후포읍에서 식당을 하는 김모(36)씨는 "대게도 안 나오는 여름철이면 피서객 덕분에 한철 장사를 했는데 올 여름은 너무 걱정스럽다"며 "6월 들어서 주말에 손님이 한명도 없었던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공무원 이모(37)씨는 "매년 계모임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네가족이 여름 휴가를 갔는데 올해는 어려울 것 같다"며 "일단 두가족이 올 여름 휴가 계획을 아예 잡지 않고 있어서 짧게 주말 나들이 정도만 할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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