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풍·암 투병 이진숙씨
아들의 작은 방은 굳게 닫겨 있었다. 엄마는 아들의 얘기를 할 땐 목소리를 낮췄고, 낮춰달라고 했다. 아들에게 상처가 하나 더 생길까봐, 아들이 고함을 지르고 원망할까봐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아버지와 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바로 그 다음날 알게 된 아들에게 드는 미안함, 그 때문에 어머니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24일 대구 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이진숙(가명·61·여)씨의 삶은 고되었다고 하기에도, 기구하다기에도 모자랐다. 스무살 시절 열살 많은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석달이 지난 어느날 새벽, 남편은 다리가 아프다고 주물러 달라고 했다. 그날 아침 남편은 출근길에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쓰러졌다. '심부정맥 혈전증.' 혈관 속에서 흘러야 할 혈액이 고체로 굳어서 흐르지 않는 질환. 5분만 걸어도 다리가 퉁퉁 붓고 쉬이 가라앉지 않는 병이었다.
남편은 앓아 누웠다.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중증이었다. 배운 것 없는 이씨는 자기집 근처 논과 밭, 그 인근에 핀 나물을 뜯어 시장에 내다팔았다. 큰딸이 뱃속에 있었고 허기가 졌다. 하지만 허탕치는 일이 더 많았다.
"그 시절엔 배불러도 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마땅한 일이었지요. 낫겠지, 낫겠지 하며 보낸 세월 중에도 남편이 원망스러운 적은 없었어요. 남편 마음은 나보다 더 힘들 테지, 했지요."
나물을 못 팔면 그날은 굶었다. 그런 날이 계속됐다. 큰딸은 소아마비가 됐다. 곧 아들이 들어섰고 둘째딸까지 낳았지만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달세를 못내 주인집으로부터 몹쓸 말을 들었을 때 이씨는 반야월의 한 직물공장에 취직했다. 나물팔기로는 버티기 버거웠다. 불로동으로 이사하며 소아마비 딸에게 집안 살림을 모두 맡기고 돈만 벌었다.
"애들이 나 먹으라고 구들장 밑에 내 밥을 따로 넣어뒀는데 다녀오면 한 숟가락씩 퍼먹어 비어있기 일쑤였지요.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엄마, 누워 있는 아빠를 얼마나 원망했겠어요."
남편은 12년 전 쉰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29년간의 병수발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다음날 아들 박성진(가명·37)씨가 쓰러졌다. 왼쪽 허벅지가 퉁퉁 부어서 한발도 내디딜 수가 없다고 했다. 병원에서 깁스를 한 뒤 2주일이나 입원해도 차도가 없었다. 아버지와 같은 병이었다. 결혼을 앞둔 아들에겐 청천벽력이었고, 평생을 약속했던 연인은 떠나고 말았다.
"유전이었나봐요. 좋은 것만 물려주지 왜 아들한테 이런 몹쓸 것까지 주는지 하늘에 원망했습니다."
이씨의 병수발은 계속됐다. 하지만 4년 전 그녀에게 중풍이 찾아왔다. 또 '난소 장액성 낭종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해야 했다. 잘 되었다는 수술은 지난해 재발해 재수술을 받았다. 그러던 지난 봄 암세포가 간으로까지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기가 막히지요. 항암치료를 하니까 머리가 다 빠지더니 뭘 먹지도 않았는데 배가 차올라요. 잘 됐다더니 간암으로 번졌다는군요."
아들은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함께 앓고 있다.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 바둑을 두고 바둑TV 프로그램만 보는 외톨박이가 되었다. 이씨는 자신이 죽고 혼자 남게 될 아들 걱정으로 한숨만 쉬었다. 기초수급권자로 받는 50여만원과 아들의 장애수당 16만원으로는 병원 치료비를 대기에도 빠듯하다. 수십년 된 세탁기가 고장나 손빨래를 하고, 전기밥솥이 고장나 식은밥을 먹는다. 그래도 아들에게 좋다며 인진쑥, 망개뿌리, 오가피, 느릅나무껍데기 등을 번개시장에서 사다 달이고 있었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매일신문사입니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