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찐 고기닭을 거부한 수탉 세상을 향해 부리를 날리다

입력 2008-06-25 07:47:38

열혈 수탉 분투기/창신강 지음/전수정 옮김/션위엔위엔 그림/푸른숲 펴냄

예전에 국도변 식당에서 본 수탉 두 마리가 기억난다.

한 놈은 위풍이 당당했다. 볏을 세우고 걷는데 건방이 하늘을 찔렀다. 부리로 땅을 파면 암탉들이 쪼르르 따라다니며 지렁이를 잡아먹었다. 워낙 절도 있고, 위세가 등등해 기품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다른 한 놈은 구석으로만 다니며 하는 짓도 양아치였다. 제 먹을 것 겨우 건사하는 수준. 위풍당당한 수탉 근처에는 가지도 못했다. 털도 군데군데 빠져 볼 상 사나웠다. 당연히 암탉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누가 '닭대가리'라고 했던가. 마치 인간사를 보는 듯해 두 마리 수탉을 한참 동안 관찰했다.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은 이들은 한없이 희생하는 암탉의 감동적인 생을 기억할 것이다. 청소년 문학 시리즈 '마음이 자라는 나무'의 16번째 책인 '열혈 수탉 분투기'는 수탉의 일생을 담고 있다. 살찐 고기닭 대신 훌륭한 수탉이 되고 싶어한 수평아리가 시련을 딛고 마침내 자유를 찾아 무리를 이끌고 길을 떠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암평아리인 줄 알고 있었는데 덜컥 수평아리로 판명이 난 '나'. 알도 낳지 못하기 때문에 고기로 팔려나갈 수평아리의 운명. 그러나 훌륭한 수탉만 되면 암탉을 거느리며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길이 쉽지 않다. 옆집 수탉 무리의 끊임없는 침범과 내부에서도 몇몇 남은 수탉끼리 다툼이 생긴다.

아빠의 가르침을 받으며, 토종닭 대신 서양 닭을 특별하게 대하는 주인에게 배신감도 느끼고, 기계처럼 살다가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려 집단 폐사하는 인근 양계장의 닭들을 보며 허무감에 사로잡힌다. 처음 소리조차 내기 어렵던 '나'는 이제 그 어떤 수탉보다 아름답고 우렁찬 울음을 낸다.

이 책은 특히 아빠 수탉과 '나'의 관계를 드라마틱하게 펼쳐낸다. 족제비와의 싸움에서도 살아남는 아빠는 나의 영웅이자 든든한 조력자이며 삶의 길잡이다.

"수평아리 노릇이 쉽지 않네요."

"좋은 수탉이 되는 것은 어렵지만 양질의 고기닭이 되는 것은 아주 쉽단다. 하루종일 먹고 자기만 하면 되거든. 뭔가 배울 필요 없이, 체중이 2㎏만 되면 주인 밥상에 오르는 요리가 되기에 충분하지. 네가 세상에 나온 사명을 다한 거란 말이다. 얼마나 쉬우냐!"

아빠는 '나'가 닭장 속에 갇힌 닭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빠의 비극적인 죽음과 '가짜 양키' 이모의 자살, 첫사랑 롱롱과의 헤어짐, 영원한 경쟁자이자 친구인 하얀 깃털과의 이별 등을 겪은 나는 이제 길을 떠나려고 한다.

이 책은 중국 헤이룽장성 제5회 문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지은이 창신강(常新港)은 중국 우수 문학상을 세차례나 수상한 아동문학가이다.

닭의 운명으로 태어났지만, 이를 깨고 자아를 찾아가는 수탉의 분투가 인간사와 오버랩되면서 청소년들에게 교훈과 함께 감동을 선사한다. 251쪽. 8천900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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