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멍부형 담임

입력 2008-06-24 07:05:06

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 근처의 초원 일대에 점프력이 강한 산양 '스프링벅'이 있다. 이 산양들은 절벽에서 수천마리가 한꺼번에 뛰어내려 떼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수십 년에 한번씩 발생한다고 한다. 초원에 먹을 풀이 없어지면 산악에 오르는데 풀쩍풀쩍 뛰며 놀던 산양 무리들 중에 한 마리가 달리기를 시작하면 다른 산양들이 한 마리씩 풀을 뜯다 말고 움직여 그 뒤를 따른다. 이러다 산 정상으로 올라가 막다른 절벽에 이르게 되었을 때 리더가 뛰어내리면 차순위의 산양이 뛰어내리고, 그 뒤에 따르던 산양들이 잇따라 뛰어내린다. 그렇게 한곳에 살던 산양의 무리들은 몰살하고 만다. 이는 결국 리더의 잘못된 인도로 인해 수천의 산양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최악의 담임은 '멍게형'(멍청하고 게으른 형)일 것 같지만 사실 아니다. 바로 '멍부형'(멍청하고 부지런한 형)이다. 세계2차대전의 명장 '몽고메리'도 가장 경계해야 하는 유형으로 멍부형을 지목했다. 담임이 이런 스타일이면, 학생들의 공부량은 많은데 결과가 좋지 않다. 잘못된 방향으로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가면 목적지로부터 점점 멀어지기만 한다. 혼자서가 아니라 많은 학생들을 끌고 간다면 결과는 최악이다. 학생들은 담임 교사에 대해 신뢰를 잃어버리고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으며 공부에 싫증을 내게 된다.

담임이 차라리 멍게형이라면 학생들은 오히려 자신의 살 길을 찾는다. '우리 담임은 잘 모르니까'하면서 학생들끼리 똘똘 뭉쳐 목표를 재설정하고 나아갈 방향을 정해 움직인다. 그러나 멍부형 담임은 학생들을 오른쪽으로 갔다가, 다시 왼쪽으로, 또다시 오른쪽으로 끌고 가 한없이 피곤하게 만든다. 바로 아프리카의 산양 '스프링벅'의 무리를 이끌어 절벽으로 달리는 우두머리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고의 담임은 어떤 유형일까. '똑부형'(똑똑하고 부지런한 형)이 아니라 '똑게형'(똑똑하고 게으른 형)이다. 똑부형은 똑똑한데다가 부지런하기까지 해서 담임 교사로 자질이 뛰어나지만 따라가는 학생들은 힘겹다. 뱁새가 황새를 쫓다가 다리가 찢어지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 꼴이다. 똑게형은 학생들에게 무관심해서 내버려 두는 듯하지만 학생들의 장단점을 잘 파악해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고, 동기부여를 하면서 나아갈 방향에 따라 일을 잘 추진해 나간다. 학생들이 지치면 유머와 위트로 기분전환을 해주고 학생들이 해이해지면 강한 질책을 해가며 학급을 리드해 나간다.

학생들은 다양한 가정에서 자라고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다. 특히 중·고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청소년기에 해당된다. 엄격한 규율에 따르기보다는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어른들의 행동을 모방하려 해서 여러가지 어려움이 생긴다. 모든 학생이 다 그렇진 않지만 가끔 학급에서 일탈된 행동을 해 부적응을 보이는 학생들이 있다.

담임은 이런 학생들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담임 교사는 모든 학생들을 무사히 다음 학년이나 상급 학교에 진학시킬 책임이 있다. 마치 양치기가 양들을 이끌고 다음 장소로 한 마리의 낙오도 없이 이동시켜야 하듯 담임 교사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손삼호(포항제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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