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남긴 상처 아름다운 언어로 승화
해동갑하여 흰나비 같네 - 박재삼의 '봄 바다에서'
나는 일본서 낳았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이 땅에서는 살 도리가 없어 일본 땅을 밟았으니, 무슨 벼슬아치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근근이 노동으로써 생계를 유지하던 아주 가난한 아버지의 아들로서 나는 태어났었다. 일본에서도 견디기 힘들어지자 그들은 귀국해서 삼천포에 자리를 잡았다. 어머니는 고기를 파는 행상이었고 아버지는 지게 품팔이를 했다. 아버지의 첫 손님은 진주로 고기를 팔러 가는 어머니였다.(김현, '시인을 찾아서' 부분)
삼천포는 박재삼의 땅이다. 아니, 삼천포는 박재삼의 다른 이름이다. 진주장터로 생어물 장사를 하던 어머니와 지게 품팔이를 하던 아버지. 박재삼은 정말 지독한 가난 속에서 자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해방을 맞이하고 동아일보 신문배달원, 삼천포 여중 급사 생활을 하며 야간 중학교를 다니는 등 가난은 그의 시적 세계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토대이다. 하지만 박재삼에게 있어서 가난은 그냥 가난이 아니다. 이미 추억이다. 가난이 남긴 상처를 아름다운 언어로 치환한다. 고통과 슬픔을 승화시키는 박재삼의 정서는 아름답다.
해가 지고 있었다. 삼천포 시장 들어가는 길목에 차를 세우고 바다 너머로 사라져가는 해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사라지는 것은 아름답다.
화안한 꽃밭 같네 참. // 눈이 부시어, 저것은 꽃진 것가 여겼더니 피는 것 지는 것을 같이한 그러한 꽃밭의 저것은 저승살이가 아닌 것가 참. 실로 언짢달 것가. 기쁘달 것가. // 거기 정신없이 앉았는 섬을 보고 있으면, // 우리가 살았닥 해도 그 많은 때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숨소리를 나누고 있는 반짝이는 봄바다와도 같은 저승 어디쯤에 호젓이 밀린 섬이 되어있는 것이 아닌것가.(박재삼, '봄 바다에서' 앞부분)
물이랑과 물이랑 사이에 은빛을 내며 반짝이는 수많은 꽃송이. 시작과 마침, 삶과 죽음을 공평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피는 것과 지는 것이 같다고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결국 나도 이미 박재삼이 되어 저승 어디쯤에 호젓이 밀린 섬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는 해는 더욱 깊은 저녁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우리가 소시적에, 우리까지를 사랑한 남편 문씨 부인은, 그러나 사랑하는 아무도 없어 한낮의 꽃밭 속에 치마를 쓰고 찬란한 목숨을 풀어헤쳤더란다. // 확실히 그 때로부터였던가, 그 둘러썼던 비단치마를 새로 풀며 우리에게까지도 설레는 물결이라면 // 우리는 치마 안자락으로 코 훔쳐주던 때의 머언 향내 속으로 살달아 마음달아 젖는단 것가. // 돛단배 두엇, 해동갑하여 그 참 흰나비 같네.(박재삼, '봄 바다에서' 뒷부분)
그 '화안한 꽃밭' 속에 비단치마를 쓰고 빠진 여인이 남평문씨였다. 물론 남평문씨는 허구적 인물이다. 시인이 어릴 때 치마 안자락으로 코 훔쳐주던 어느 여인이 바다에 빠져 자살하였던 일화에서 비롯된 비애와 슬픔을 꽃밭 같은 봄 바다로 그려내었다. 봄의 화사한 햇살을 받은 봄 바다를 꽃밭과 같다고 본 시인은 꽃밭에 꽃들이 피고 지는 것처럼 사람이 살고 죽고 하는 것이라 생각했으리라. 죽음조차 해동갑하여 흰나비 같다고 그리는 시인의 영혼이 진정 아름다웠다. 나도 덩달아 살 달아 마음 달아 흠뻑 젖어 버렸다.
돌아보는 삼천포 시장이 노을에 빨갛게 달아 있었다. 어디선가 돛단배 두엇이 나타나 해동갑할 때까지 흰나비처럼 떠다닐 것 같았다. 슬픔도 지극해지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박재삼의 시는 지극히 슬프다. 그런데 슬픔으로 그치지 않는다. 아름답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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