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이제 일어설 기회…혼자선 안돼, 도민 모두 함께 해야죠
관료와의 인터뷰는 모범생과의 만남 같다. 대개 재미가 없다. 인터뷰에서 그들은 각별히 입조심을 한다. 구설에 오를 만한 이야기도 잘 않고 속내도 잘 안 드러낸다. 지난주 김범일 대구광역시장에 이어, 김관용 경북도지사를 만났다. 취임 2주년 인터뷰. 김 지사와의 인터뷰 분위기도 딱딱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것이 선입견임을 아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는 열정적인 사람이었고 로맨티시스트로 비쳤다. 인터뷰는 17일 오전 경북도지사 접견실에서 1시간여 동안 이뤄졌다.
◆도청 이전, 역사의 한 페이지 넘겨야
-7월 1일이면 취임 2주년을 맞으시는데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그는 심한 목감기 때문에 편도선이 많이 부었다며 목소리를 못 내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운을 뗐다.)
"일에 중독이 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임해 왔습니다. 경북도가 일의 중심이 되는 조직·환경·기반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도민들이 많이 도와주셨는데 그런 에너지를 결집해서 '들이대고' 나가면 될 것 같습니다."(처음에는 그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 녹취하기 힘들었지만 이내 톤이 높아졌다.)
-임기 전반기 동안 거둔 성과를 말씀해 주십시오.
"투자 유치를 통해 외자가 들어오는 데 집중했어요. 외자 1조7천억원 등 5조7천억원의 투자를 도내에 유치했습니다. 투자 유치 최우수 지자체로 선정됐고요. 외자 유치에서는 고용 유발 못지 않게 기술 이전이 중요합니다. 기술 많이 가진 곳이 선진국 아닙니까? 2년 동안 씨 뿌려 놓았는데 이제 계약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면 됩니다."
-한미 FTA가 타결되면 경북도가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미 FTA는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도지사 산하에 전담기구(FTA 대책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농사 지을 사람 없는 농촌 현실을 감안해 농민사관학교를 설립했고, 한우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팀도 만들었습니다. 곡물·사료를 경북에서 자체 생산하고, 송아지 수를 조절해 가격을 보장해 주며, 유통체계를 합리화하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요즘 경북의 다문화정책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다문화 가정의 자녀에 대한 교육이 중요합니다. 10년 후 이들이 입대하면 그들에게 총을 맡기는 상황이 됩니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를 우리 국민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나라와 지자체에서 관리하고 지원해 줘야 합니다. 경북도가 이런 목소리를 가장 강하게 내고 정책도 많이 펴고 있습니다."
-도청 이전지가 결정되었습니다만, 탈락지 주민들의 반발이 큽니다. 선정 과정이 공정치 못했다는 주장인데요.
"도청 이전이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겨야 할 때입니다. 탈락지역 주민들의 섭섭한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들의 반발 역시 애향심 때문이지요. 탈락지역의 반발도 민주적 절차를 통해 수렴하고 논의하며 합일점을 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김 지사는 도청 이전지 결정 과정은 공정했다고 강조했다. 83명의 추진위원들이 경찰 입회 아래 4박 5일 동안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발언·행동이 이전지 결정에 영향을 줄 수도 있으리라는 판단 때문에 15번 열린 추진위원회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일이 '빽'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일들을 이루기에 임기 4년은 짧지 않습니까. 재출마 의향이 있습니까?(김 지사가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것을 놓고, 당시 정·관가에서는 지역의 한나라당 초선 의원들이 그가 단임할 것으로 기대해 지지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코멘트를 안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임기 4년이 짧지 않으냐는 말 같은 것으로) 유도하지 마세요. 루머야 돌 수 있는 거겠지요. 도정이라는 중대사를 놓고 지사가 개인 신상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하면 온갖 루머가 만들어질 것이고, 소설 몇 권쯤 쓰겠지요. 저는 일이 저의 '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방분권 기조가 퇴보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경북에 더 잘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15년 동안 주름진 부분을 정당하게 펴달라는 거지요. 동해안 7번 국도 보세요. 18, 19년째 개통이 안 되잖아요. 요즘 개각 및 인사 쇄신안에서 '영남 배제론'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대구·경북 합쳐봐야 서울 영등포구의 경제력보다 작습니다. 너무 낙후돼 있어요. 정부 관료들은 그 실상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가정 이야기 좀 해주십시오.
"그 시기 다 그랬지만 우리 집도 가난했습니다. 먹을 게 부족해 술찌끼를 말려 먹었는데, 먹고 나면 취하잖아요.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야단맞고…(웃음). 어머니, 정말 고생 많이 하셨어요. 일자무식이셨지만 참 적극적인 분이었어요. 19살 되던 해 초등학교 교사가 된 저를 '출세했다'며 업고 동네를 다녔어요. 저도 자식(2남)이 있지만 그렇게 키울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김 지사는 요즘도 팥죽 한 그릇을 온전히 비우지 못한다고 한다. 어머니가 팥죽 장사를 하시면서 고생스럽게 자녀를 키운 기억 때문이다.)
-애처가라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아내(김춘희)가 수필가인데 책을 무지하게 많이 읽습니다. 아내는 제가 생각 많이 하며 살아가도록 자극을 주는 사람이에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셔서 제가 많이 감동받았어요."(김지사는 맞선을 통해 김춘희씨를 만났다. 서울의 한 경양식당에서 있은 맞선 후 그는 두번째 만남을 약속하면서 '다음번 청량리역에 도착할 때는 태극기를 휘날리며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했는데 김씨는 그말에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김 지사의 사이월드 미니홈피에는 아내에 대한 구구절절한 사랑이 담겨 있다. 그 중 한 구절을 옮긴다. '피곤해서 집에 돌아오면 항상 웃는 얼굴로 맞아주는 당신 덕에 없던 에너지가 재생되오~ 당신은 나의 충전지!!ㅋ')
◆행복하냐고? 웃을 수밖에 없다
-자녀에 대해 이야기해 주십시오
"아들 둘이 있는데 아토피 때문에 정말 고생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 7, 8년 동안 고통의 연속이었어요. 그런 고통을 극복하고 잘 자라준 자식들이 고맙습니다. 큰애는 회사에 다니고, 작은애는 대학원(서울대)에 다니고 있어요. 독립성도 강하고. 어디 가도 아버지가 도지사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네요. 원서 낼 때 아버지 직업란에 '퇴직 공무원'이라고 쓴다는군요."(웃음)
-공직에 몸 담기 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제자들과 요즘 연락하시나요?
"연락하다뿐입니까. 사실 그 사람(제자)들이 저를 구미시장으로 만들었어요. 제가 처음 교사로 부임했을 때 19살이었는데 제자들은 12, 13살이었어요. 제가 1995년 구미시장에 첫 출마했을 때 직·간접적으로 제게 배웠던 제자들이 한 900명 정도 있더군요. 선거도 모르는 저였는데, 그들이 자원해 나서 선거 다 치러줬어요. 제가 참 복이 많습니다. 선생 노릇 제대로 못했는데 저들이 사제지간으로 받아들여줘서. 참 고마운 일입니다."
-행복하십니까?
"웃을 수밖에 없어요.(김 지사는 이 답을 하면서 박장대소했다.) 참 많이 배우고 느꼈는데 주민이 하늘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로서는 무조건 숙여야 하는. 주민들로부터 정통성이 나오니까."
-도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경북은 너무 오랫동안 주변에 있었어요.이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잠재된 역량을 모아야 합니다. 모든 것에는 사이클이 있습니다. 경북도도 일어설 사이클을 만났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고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 도민들에게서 그 가능성을 봅니다. 혼자서는 안 됩니다. 함께 가야 합니다."(김 지사는 취임하자마자 도청 회의실에 걸려 있던 역대 도지사의 사진을 내리고, 그 자리에 경북도내 23개 시장·군수의 사진과 현안을 걸었다. 도가 시·군의 시어머니가 아니라 협력하는 존재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인터뷰하는 동안 김 지사의 목이 걱정됐다. 그는 격정적이었다. 벌떡 일어서 한국 지도 앞에서 경북지역을 짚어가며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그의 좌우명은 '처변불경 처변불경(處變不驚 處變不輕)'이다. 어떤 일이 닥쳐도 놀라지 말고, 좋은 일이 생겨도 가볍게 처신하지 마라. 이 좌우명은 집무실에 편액으로 걸려있다. 그가 도지사에 취임한 뒤 집무실에서 바꾼 것은 이 편액 하나뿐, 모든 집기를 전임 이의근 지사가 사용하던 그대로 쓴다고 했다.
김해용 기획취재부장 kimhy@msnet.co.kr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사진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 김관용은?=1942년 11월 29일 경북 구미시 고아읍 문성리에서 태어났다. 1961년 대구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구미초등학교 교사로 몸담았다. 1969년 영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행정고시(제10회)에 합격, 공직에 발을 들였다. 구미세무서장과 대통령민정비서실 행정관 등을 지낸 뒤 1995년 민선 제1기 구미시장에 출마, 당선된 뒤 내리 3선에 성공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민선 제4기 도지사로 선출됐다. 주요 정책을 신중하게 결정하지만, 한번 결정하고 나면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학생 시절에는 태권도에 빠져들어 3단을 땄고 그림에도 조예가 깊다. 집안에 돈이 많았다면 화가가 됐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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