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현역 최고의 감독으로 꼽히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토니 라루사 감독은 내야수 출신으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냈다. 19살에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유격수로 데뷔해 촉망받는 유망주의 대열에 올랐지만 시즌 후 소프트볼 경기를 즐기다 어깨 근육이 끊어지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그 부상은 선수 시절 내내 그를 괴롭혔고 결국 1977년 아무도 돌아보지 않은 채 쓸쓸히 은퇴하고 말았다.
16년 동안 3개의 메이저리그팀와 12개의 마이너리그 팀을 전전하며 그가 가까이 지낸 건 그라운드보다 벤치였다. 그러나 야구에 대한 그의 열정과 집념은 실로 대단했다. 은퇴 후 화이트삭스 산하 마이너리그의 코치 생활을 하면서 법대를 졸업했고 변호사 자격증을 딴 그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법조인의 윤택한 삶을 누릴 수도 있었다. 만류하는 부인에게 "나는 마이너리그 버스를 타더라도 야구를 하며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며 마이너리그의 감독으로 활동을 계속했다.
1979년 34세라는 최연소 나이로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감독이 된 그는 86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최고의 감독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감독의 임의대로 투수를 교체해왔던 메이저리그의 투수진 운용에 소위 '라루사리즘'이란 획기적인 용병술을 등장시킨 것. 최고의 불펜 투수를 9회 1이닝만 던지게 해 '마무리 투수'라는 새로운 개념을 개발했으며 중간, 구원 투수들도 명확한 임무를 설정해 현재 전세계 프로야구에서 사용하는 불펜 분업화를 보다 세밀하게 정착시켰다.
그 결과 1988년부터 3년 연속 월드시리즈 진출이란 위업을 달성, 오클랜드의 전성시대를 열었고 1996년 세인트루이스로 자리를 옮겨서는 팀을 중부의 제왕으로 인식시켰다. 엄청난 양의 정보 분석을 통해 특정 투수에 대한 타자나 특정 타자에 대한 투수 기용을 독특하게 선보이며 작전 성공률을 높였고 치밀한 전략으로 역대 최다승도 갱신했다.
벤치에서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시름에 젖었던 그가 창의적인 야구 전술로 현대 야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며 지도자로서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경북 영일 출신으로 1983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4년간 유격수로 활동했지만 그의 성격만큼 조용히 사라졌던 선수가 있었다. 이후 청보 핀토스로 트레이드됐고 4년 더 선수로 뛰었으나 주전으로 활약하지는 못했다. 그 역시 선수 시절 그라운드보다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러나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고 매일 매일 경기 소감을 꼼꼼이 수첩에 적어 나갔다.
그가 바로 현재 LG 트윈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진호 수석코치다. 그는 자신이 느꼈던 심정을 바탕으로 선수들을 헤아리는 데 힘써 일사분란한 조직력을 조성, 현대의 2연패에 진정한 공로자가 됐다. 프로 선수로서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자기 개발에 전력해 삼성의 그 어느 화려한 스타보다 장수하며 인정받는 코치가 된 그야말로 라이온즈가 배출한 진정한 인재 중의 인재가 아닐까.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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