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싶은 길]대구 북구 침산동 '오봉산'

입력 2008-06-19 14:54:36

침산(砧山)의 재발견이었다. 대구에 살면서도 침산을 잘 몰랐다. 흔히 행정구역 이름(침산동)으로만 알고 있는 침산은 달구벌 북쪽에 자리 잡은 유서깊은 산이다. 달리 수구막이산이라 불리기도 하고 소가 누워 있는 것 같다 해 와우산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에게는 봉우리가 다섯개라는 의미의 오봉산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오봉산이라는 이름은 북구 침산동 오봉오거리의 유래가 됐다.

1965년 공원 지정 이후 88년 조성이 끝난 침산공원은 오봉오거리 주변에 들어선 도심 속 휴식 공간으로, 요즘 같은 더운 날씨를 식히기에 제격이다. 공원 입구에 들어선 오봉오거리 인공폭포부터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데 높이 15m, 폭 40m의 인공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에 가슴속까지 확 트이는 기분이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온 주부 이숙희(33)씨는 "시원한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분수를 즐기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했다.

분수에서 잠시 더위를 식히곤 인공폭포 옆으로 난 계단을 올랐다. 정상까지는 30분 남짓으로 계단과 길의 반복. 쉼없이 오르기엔 조금 힘들지만 나무 내음을 맡으며 천천히 걸어가면 되고, 곳곳에 마련된 평상과 벤치는 잠시 발길을 잡는다. 임신한 아내와 공원을 찾은 이준영(35)씨는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돼 가벼운 운동지로 그만"이라고 했다. 공원내 2곳의 체육시설에는 윗몸일으키기나 허리돌리기 기구에 올라 운동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이명화(55)씨는 "친구들과 함께 공원에서 훌라후프 돌리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산 곳곳에 나무 그늘이 많아 한여름 나는데 최고"라고 했다.

정상 직전에는 50m 남짓한 지압보도가 있다. 신발을 벗고 걸으면 발 경락을 자극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안내 문구를 따라 지압보도를 걷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 정상에 올랐다면 침산의 유래를 설명한 비석과 시비를 눈여겨 볼 만하다. 그 옛날 침산 앞에는 신천과 금호강의 맑은 물이 흘렀고, 희고 고운 넓은 모래 벌판이 펼쳐졌다. 백사벌 또는 백사부리라 불렸던 모래벌판에는 빨래하는 아낙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전한다.

침산은 빼어난 풍경을 자랑했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 초 향토출신 문인 서거정 선생은 대구의 아름다운 열 곳을 골라 '대구십경'이라 했는데, '침산만조(砧山晩照; 침산의 저녁 노을)'가 그 중 하나였다. 선생이 반한 그때 그 모습은 이제 사라졌지만 그 옛날 풍경을 가만히 상상할 수 있는 시비는 남아 있다. '물은 굽이 돌고 산은 끝났는데/침산 푸른 숲에 가을빛 어리었네/어디서 해 늦은 방아소리/손의 가슴 찧는고….' 노산 이은상 선생이 번역한 '침산의 저녁노을'을 읊조리며 공원을 내려오는 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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