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적 인기에 연연안해…대구 도약 전환점 마련 하고파
매일신문 주말판을 개편한 지 이제 세달여. 적지 않은 수의 유명인사가 주말판 '인물+'난에 소개됐다. 김범일 대구광역시장은 진작 이 난을 통해 다뤘어야 할 인물이었다. 그는 7월 1일이면 취임 2주년을 맞는다. 4년 임기의 반환점을 앞둔 그를 대구시청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달변이었다. 시정에 관해 한치의 막힘이 없었다. 마치 잘 준비된 시정 브리핑을 보는 듯했다.
◆시정에 관한 한 그는 막힘이 없었다
-시국이 어수선하고 민심도 심상찮습니다. 지역에서 대통령이 배출됐다며 기대가 컸지만 정부가 지방을 챙길 여력이 없을 것 같습니다. 지역균형발전 기조가 후퇴하리라는 우려도 있고요. 대구시와 정부와의 관계 설정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습니까.
"정부 출범 초기에 이 같은 상황이 벌어져 매우 안타깝습니다. 대구의 숙원 사업에 관한 정부와의 의사 소통은 다소 지연되고 있지만 충분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특정 지역에 정치적 특혜가 주어지는 시대는 이제 아닙니다. 대구가 열심히 하는 만큼 성과가 있을 겁니다. 적어도 예전 정부에서 받은 것과 같은 차별과 소외는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지방의 목소리를 강력히 내겠습니다."
-대구시 살림이 걱정입니다. 재정 구조가 매우 취약한데요. 어떻습니까.
"시의 재정이 좋다고 할 수 없으나 4, 5년 전보다는 많이 건전해졌습니다. 부채비율(예산 대비)이 2002년에 94.6%나 되었으나 2007년 현재 66.8%까지 낮아졌어요. 부채를 꾸준히 상환한데다 예산 규모가 매년 늘어난 데 따른 것이지요. 부채 수준은 높지만 염려할 수준은 이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부채를 지속적으로 줄여나가겠습니다. 그러나 대구의 인프라 구축과 발전 기반 마련, 대형 프로젝트에 필요하다면 과감히 부채를 내겠습니다."(김 시장은 시 부채 문제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잘못 기사화될까봐 자료를 확인시켜가며 설명을 했다.)
-대운하 사업 반대여론이 많습니다. 환경재앙을 부를 것이며 경제적 실익도 없을 거라는 지적도 있지요. 대구시는 대운하 찬성론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는데, 자칫 지역 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지 않을까요?
"물길, 하늘길을 뚫어야 대구가 삽니다. 대운하는 차치하더라도, 매년 반복되는 홍수 피해와 용수 공급 때문에 낙동강을 더 이상 방치해 둘 수 없습니다. 대운하 계획은 낙동강의 수량·수질·환경·물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주는 호기여서 대구시와 경북도, 부산시, 경남도 등 영남권 5개 광역자치단체가 한목소리를 내는 겁니다. 무엇이 영남권 발전에 실익인가 냉정히 따져보고 공론화했으면 합니다. 영남권 신공항도 사업 추진이 시급합니다. 영남권 5개 시·도가 협의해 최적의 후보지를 정하는 등 사업을 빨리 진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GRDP≠삶의 질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일회성 이벤트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세계육상대회를 통해 대구는 과연 어떤 실익을 얻을까요.
"육상대회는 대구 브랜드를 알릴 절호의 기회입니다. 대회를 위해 시설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고, 기존의 시설을 십분 활용하는 것인 만큼 투자 대비 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아파트 초과 공급과 지역 주택시장 침체가 심각합니다. 무분별한 재건축·재개발로 도심 난개발도 빚어지고 있습니다만.
"작금의 대구가 겪고 있는 미분양 및 주택시장 침체는 지난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막겠다며 서울과 동일한 잣대를 지방에도 댔기 때문에 빚어진 겁니다. 건설사들의 초과 공급도 원인이지요. 아파트가 투기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교훈을 건설사도 시민도 뼈아프게 느끼고 있습니다. 투기 목적의 아파트 공급은 안 되지만 대구 도시 환경의 질을 높이는 도심 재건축 투자는 지속적으로 추진할 생각입니다."
-대구의 지역내총생산(GRDP)이 전국 광역시·도 중에서 17년째 꼴찌입니다. 삶의 질도 꼴찌라고 보십니까?
"대구의 GRDP가 꼴찌인 것은 IMF 외환 위기 이후 섬유·건설 경기가 침체된 탓입니다. 돈은 구미·포항 등 경북에서 벌고 소비는 대구에서 이뤄지는 지역 산업구조 때문에 그런 통계가 나오는 거지요. GRDP가 꼴찌라고 해서 시민 삶의 질도 그런 것은 아닙니다. 소비지표 등으로 볼 때 대구는 전국 광역시 가운데 중·상위를 차지하고 있어요. 도시 인프라도 여느 도시와 비교해서 뒤지지 않습니다."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와 가장 보람 있었던 때를 말씀해 주십시오.
"기업 유치할 때가 정말 힘듭니다. 더구나 막상 지역에 투자하겠다는 기업이 있어도 공장 용지가 없어서…. 가장 기뻤던 때는 세계육상대회 유치에 성공했을 때였어요. 교수들이 국제학술세미나를 유치했다고 전화를 걸어올 때도 정말 기뻤습니다."(한 순간만 꼽으라고 했지만 김 시장은 여러 순간을 나열했다.)
-시장님은 워커홀릭(일 중독자)입니까?
"노(No). 저는 일 중독자가 아닙니다. 잠도 하루에 6, 7시간 정도 충분히 자는 편이에요. 휴일에는 산에 오르고 사람도 만나면서 지냅니다. 사람 만나는 것이야 업무의 연장일 수 있겠지만…."
◆난 운이 좋은 사람
-얼마 전 시장님은 비리 혐의를 받은 건설업자를 불구속 기소해달라는 탄원서에 서명해, 범법자를 비호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왜 그랬나요.
"안 그래도 좋지 않은 대구 경제가 대형 주상복합 건설 사업 중단으로 타격을 입을까 걱정했습니다. 적어도 사업만은 추진할 수 있도록 하자는 뜻에서 서명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절차상으로 적절치 못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시장님의 가정사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어머닌 평범한 분이셨지만, 아버지께서는 매우 '샤프'하신 분이었어요. 공부 못하신 게 한인 분이셨지요. 초교 5년생인 아들을 대구로 유학 보내셨지요. 지금 생각하면 참 아찔합니다. 저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예요. 전 참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어린 제가 객지에서 하숙생활을 하면서 잘못된 길로 접어들지 않은 것도 그래요."(김 시장의 가정사 및 개인적인 이야기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질문에 대답하면서 김 시장은 가장 크게 웃었다.)
-결혼은 어떻게 하셨나요?
"안사람하고 저는 동갑이에요. 고교시절 영어 동아리 활동을 하다 만났어요. 결혼을 일찍 했어요. 군 복무 중 식을 올렸으니까 아마 스물네살 때지요? 핏줄은 못 속인다고 자식(1남 1녀)들도 일찍 결혼했어요. 딸은 서울에서 공직생활을 할 때, 아들은 정무부시장 재직 시절 '치웠는데' 친지에게만 청첩장을 보내 조용히 결혼식을 올려줬습니다."
-원래부터 공무원이 되기를 꿈꿨나요?
"당숙께서 관직에 진출하라고 어릴 적부터 권하셨어요. 그러나 기업에 취직하겠다는 생각에 상과대학을 갔어요. 졸업 후 인기 있는 직장을 찾아보니 한국은행하고 대기업이 있던데, 막상 거기엔 들어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시험쳐서 실력대로 갈 수 있는 직장은 공직이더군요. 그래서 행정고시를 쳤습니다. 당숙 말대로 된 거지요."(김 시장은 2003년에 대구시 정무부시장으로 부임했다. 산림청장을 지낸 그는 내각 입성 가능성이 있는 TK인사로 꼽혔다. 정무부시장 하마평에 오르내릴 당시 그가 민선 대구시장을 꿈꾸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은 사실이 됐다.)
◆행복하진 않다
-고마운 사람은 누군가요?
"고마운 사람이라….(김 시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너무 많아서 말하기 힘드네요. (한명만 꼽아달라고 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다. 평가가 엇갈리긴 해도 행정 업무를 하다 보면 박 전 대통령이 정말 탁월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지금 행복하신가요?
"행복하면 좋겠는데 그렇질 못하군요. 생각했던 만큼 대구의 현안들이 잘 풀리지 않아서…. 그래도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은퇴 이후 계획에 대한 물음에 그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만 대답했다. 향후 정치적 행보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말을 아꼈다.)
-10년 후 어떤 시장으로 기억에 남고 싶습니까?
"'그 친구가 시장이었을 때 대구 도약을 위한 전환점을 만들었네'라는 평가를 받는 게 꿈입니다. 단기적 인기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굵직굵직한 현안 해결의 기초를 닦고 경제 활력을 불어넣는 데 힘을 다하겠습니다. 이는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단기간에 한방 터뜨리려고 대박을 좇다간 쪽박을 찹니다. 어려움이 있지만 희망을 갖고 하나씩 실천하면 성과가 있을 겁니다. 시민들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사석에서 김 시장은 Y담으로 좌중 분위기를 이끌지만, 공식석상에서는 좀처럼 빈틈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의 집무실에는 '대인춘풍'(待人春風)이라는 액자가 걸려있다. 사람 대하기를 봄바람처럼 하라는 뜻. 중앙정부에서 30년 동안 잔뼈가 굵은 행정통이면서 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그의 대인관을 엿보게 하는 글귀다. 그와의 인터뷰는 아쉬움을 남겼다. 시장의 바쁜 일정을 쪼개 시간을 내다 보니 짧았다. 취중 막걸리 인터뷰라면 더 진솔한 시간이 되었을 텐데….
김해용 기획취재부장 kimhy@msnet.co.kr
▨ 김범일 대구시장은?=1950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다. 대구초교, 경북중·고교,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2년 행정고시(12회)에 합격하면서 공직에 몸을 담았다. 미국 남가주대학교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과 산림청장을 지냈으며 88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휘장 사업을 진두 지휘했다. 2003년 대구시 정무부시장에 부임한 이후 2006년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에 선출됐다. 부인 김원옥 씨와 1남1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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