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터키 아나톨리아 지방에서 고대 점토판 문서가 발굴됐다. 이 문서에는 이집트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의 하투실리 3세가 맺은 상호방위조약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고고학적 유물이 뒷받침된 최초의 전쟁으로 불리는 카데시전투와 그 후속조치를 다룬 것이었다. 기원전 1274년 시리아의 패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집트와 히타이트의 전쟁은 16년간의 공방 끝에 두 국가가 평화협정을 맺고 종결된다.
1902년 영일동맹으로 인해 조선도 시리아와 같은 입장에 처했다. 이 동맹은 러시아를 견제하고 영국과 일본이 동아시아 이권을 분할하려고 체결한 조약이었다. 3년 후 2차동맹에서 각각 인도와 조선에 대한 우월성을 상호 인정하기에 이른다. 당시 주영 일본공사 하야시 다다스는 "동양평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은 영국과의 동맹뿐"이라며 "조선의 사활적 이해(식민지)가 동맹의 조건"이라고 말한바 있다.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한 외교전문지에 실은 기고문에서 일본'호주를 동맹국(alliance)으로, 한국은 '글로벌 동반자(partner)'로 표현했다. 이는 라이스 개인의 국가안보관인 동시에 미국의 입장이기도 하다. 한국의 전략적 가치의 변화나 미국의 아'태 안보전략의 변화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동맹은 자국의 안보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국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수록 동맹은 자국 이익을 지켜주는 안전판 구실을 한다. 반면 동맹에서 배제되면 안전보장에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동맹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한 근대와 마찬가지로 현대에서도 동맹의 영향력과 상호의존성을 부정하기란 쉽지 않다.
현재 한국은 조'중 조약과 미'일'호주 신3각동맹의 경계선 위에 놓여 있다. 우리는 미국을 혈맹이라고 말하지만 미국은 한국을 동반자로 보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는 미국이 일본'호주와는 공통전략 목표가 있지만 한국과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의미로 달리 말하면 '의사(quasi) 동맹' 관계다.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이 좌절되고 MB정부의 실용외교 또한 실체가 모호하다며 공격받고 있는 상황이다. 동맹이라는 협조적 안보관계가 취약한 상태에서 한국이 '영광스러운 고립'을 선택할 것인지, 동맹의 틀을 뛰어넘는 독자적인 힘을 가질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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