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인큐베이터속 생명의 가냘픈 몸짓…

입력 2008-06-11 09:22:11

희귀병 투병 혜진양 "발달지연·심장기형 등 고통에 시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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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저는 어떻게 될까요? 저도 다른 아기들처럼 엄마 품에서 잠들고 하품하고 웃고 싶답니다." 생후 2개월의 혜진이는 또렷이 눈을 떴고, 순간 두 눈에서 주룩 눈물이 흘렀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길이 멀다고 느껴질 때, 유혹이 강하다고 생각될 때, 당신의 힘이 거의 바닥났을 때, 바로 그때 힘을 내야 해.'

"혜진이를 처음 봤을 때 입이 열려 있어서 '장애가 좀 있구나'라는 생각은 했었어요.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해 보니 '울프-허쉬호른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갖고 태어났다더군요. 장애가 있는 아이를 입양하려는 국내가정은 없어 해외입양을 모색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혜진이가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해야 가능할 것 같아요."

10일 오후 혜진이(가명·생후 2개월·여)가 누워 있는 파티마병원으로 가기 전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입양대상 아동을 돌보고 있는 지윤경 사회복지사는 혜진이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했었다.

"혜진이를 기를 능력이 없었던 혜진이 엄마는 입양시키길 원했어요. 그래서 혜진이를 낳기 전에 저희 기관으로 문의해 오셨었고요. 혜진이 엄마도 마음이 아팠는지 혜진이 얼굴을 보진 않았다고 하네요."

파티마병원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혜진이를 만난 건 그로부터 2시간 뒤였다. 인공호흡기, 가래를 뽑아내기 위한 호스, 그리고 자그마한 아기를 가두고 있는 인큐베이터. 혜진이의 몸은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인큐베이터 속 혜진이는 뭔가라도 답하려는 듯 팔다리를 쉴새없이 휘저었다.

"그동안 많이 자랐네. 살도 통통 올랐고. 혜진이 잘 있었어?"

여느 아기들이 그렇듯 혜진이도 얼굴 표정으로 의사를 표현하려 했다. 찡그리는 듯하면서 웃는 것 같기도 하고,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듯하다가도 본래 얼굴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기를 키워본 사람도 마음을 알 수 없을 그런 낯빛, 혜진이의 표정은 그랬다.

보통 아기였다면 한달에 1kg씩 체중이 늘지만 혜진이는 그렇지 못했다. 2.8kg으로 지난 4월 10일 태어나 4.8kg은 돼야 하는데 인큐베이터 속 혜진이는 아직 3.6kg이었다. "4번 염색체 일부의 결함으로 발달지연, 심장기형, 그리고 입과 입술이 찢어진 채 태어나는 게 '울프-허쉬호른 증후군'의 특징입니다. 국내에서도 사례를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극히 드물죠." 이상길 소아청소년과 과장의 설명은 '울프-허쉬호른 증후군'이라는 생소한 용어의 시원한 답이 됐다. 하지만 호전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는 '기적'을 기다려야할 만큼 희귀난치병이란 답답한 대답이 돌아왔다. "울프-허쉬호른 증후군 때문에 생기는 증상에 대해서는 약제 처방으로 가능합니다. 하지만 현상유지에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힘이 바닥난 것처럼 보이는 혜진이. 하지만 생후 2개월짜리의 가냘픈 몸짓마다 생에 대한 애착이 깃들어 있었다. 코와 입이 곧바로 연결돼 간호사가 시시때때로 가래를 뽑아내는 동안에도 혜진이는 '삶'을 쿨럭이고 있었다. 홀트아동복지회와 파티마병원 의료진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어이쿠, 우리 혜진이 힘들었어?" 입으로 연결된 호스로 가래를 뽑은 간호사는 혜진이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병원에 들어올 때는 2.1kg까지 체중이 줄었었는데 지금은 살이 많이 올랐다"는 간호사의 말을 알아 들었는지 혜진이의 팔다리는 더 힘있게 움직였다.

돌아나오는 신생아 집중치료실에는 저마다의 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아기들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이 끝나는 곳, 치료실 입구에는 엄마 젖을 제대로 빨아보지 못한 아기들에게 모유를 전하려는 엄마들이 한 줄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 따스함마저도 누리지 못하는 혜진이가 더욱 외로워 보였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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