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피크 오일 그 이후…

입력 2008-06-11 07:00:00

전문가들조차 놀랄 정도의 유가 폭등으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져 있다. 배럴당 100달러선을 돌파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150달러를 바라보고 있는 유가에 물가는 오르고 경제는 위축되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제 시작일 뿐이다.

석유고갈과 그에 따른 전세계 경제시스템의 붕괴를 예고한 주장들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있어왔다. 다만 저유가 현상이 지속되면서 이런 주장들이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을 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에너지분야에 널리 알려져 있는 허버트 피크(Hubbert's Peak), 또는 피크오일 이론이다. 1956년 지질학자 M. 킹 허버트가 발표한 이 이론의 핵심은 석유 생산량이 2000년을 전후해 정점에 이르고, 이후 생산량이 매년 3, 4%씩 감소한다는 것이다. 독일에 본부를 둔 과학자 네트워크 '에너지워치그룹(EWG)'은 석유 생산량이 정점에 다다른 피크 오일 시점이 2006년이었으며 이미 감소세로 돌아섰다고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유가가 석유생산 감소 비율만큼 산술적으로 반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석유생산량이 10% 감소하면 유가가 10% 오르는 것이 아니라 몇 배나 오를 수도 있다는 점이다. 1970년대 석유파동 때 전세계 석유공급량은 5%가량 감소했는데 유가는 4배나 폭등했었다.

이번 유가폭등은 70년대 석유파동과 달리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수급문제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고, 이런 이유로 유가가 곧 200달러에 이르러 세계경제는 붕괴상태가 되어 인류의 삶은 1900년대 이전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극단적인 전망을 담은 주장이나 이론들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올두바이 이론'도 그 중 하나다. 이 이론에 따르면 석유에 기반한 현대산업문명의 수명은 100년가량으로 1930년 무렵 시작되었으며 기껏 2030년 정도까지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의 근거로 1인당 에너지 생산량이 1978년까지 증가세를 보였으나, 1979년부터 2008년까지는 정체상태였으며, 2008년 이후부터는 가파른 하락세로 돌아서서 2030년경에는 에너지 생산량이 산업문명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올두바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유골화석 '루시'가 발견된 탄자니아의 지명으로 석기시대를 의미한다.

이 같은 종말론적 피크오일 이론들이 과장됐으며 지나치게 비관적이라는 주장들도 만만치 않다. 미국 캠브리지 에너지연구소(CERA)의 2006년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이 보고서는 새롭게 발견된 유전과 경제성이 낮아 개발되지 못했던 유전, 천연가스, 오일 셰일(oil shale), 타르 샌드(오일 샌드) 등 가용 에너지자원을 충분히 활용하고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로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 에너지 고갈을 21세기 이후로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낙관론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매장량 감소와 투기세력의 개입으로 유가가 언제든지 오를 가능성은 상존한다. 또 석유채굴 비용이 급증하는 데다 오일 셰일, 타르 샌드 등 품질이 낮은 에너지원을 활용할 경우 고도처리과정을 거쳐야 하는 점도 에너지 가격 폭등의 요인이 된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첫째, 우리나라, 일본, 중국,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은 물론 북미, 서유럽 국가 등 주요 에너지 수입국들이 힘을 합쳐 OPEC 등 수출국 단체에 대응할 수 있는 'buyer's market'을 구축해야 한다. 필자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한·중 경제인 오찬 연설에서도 한·중·일 등 5개국 장관회의에서 이 문제를 적극 논의할 것을 주문해 참석자들의 공감을 얻은 바 있다.

둘째, 정부는 혁명적인 수준의 장기 에너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4차례에 걸쳐 기후변화협약 대책을 이미 발표했지만 탄소배출 감축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방어적이란 느낌이 있다. 에너지안보 확보차원에서 산업구조와 수송체계 전반을 포함한 새로운 국가운영 청사진을 수립하고 제시해야 한다. 유가가 200달러 혹은 그 이상까지 상승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

셋째, 일반 시민들도 값싼 에너지에 대한 기억을 버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비싼 에너지는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고 머무르며 우리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바야흐로 에너지와 관련한 전략적 사고와 능동적인 실천이 우리의 숙명적 과제인 시대이다.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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