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아파트 점검 가장 몇만원짜리 소품 판매

입력 2008-06-10 09:20:44

대구 수성구 A아파트에 얼마 전 입주한 김은정(가명·36·여)씨는 지난 2일 "화장실 비데 점검을 나왔다"는 말을 듣고 한 남성에게 현관문을 열어줬다. 김씨는 며칠 전부터 비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 관리사무소에 수리를 부탁한데다 그 남성이 하자보수업체 직원처럼 명찰까지 달고 있어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는 필터가 고장났다며 일단 무상으로 교체해주겠다고 한 뒤 개당 사용기한이 6개월이라며 "행사기간이라서 필터 2년치를 한꺼번에 구입하면 싸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김씨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10만원을 현금으로 줬다. 하지만 수리 후에도 소리가 계속 나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했다가 "비데 업체에서 나온 적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김씨는 "그 남성이 전해준 명함으로 연락을 하니 등록이 돼 있지 않아 그제서야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혀를 찼다.

신규 아파트 단지를 돌며 하자보수나 설비 점검을 해준다며 접근해 바가지를 씌우는 사기 사례가 적지 않다. 이들은 입주 초기 혼란을 틈타 멀쩡한 기기를 교체해주는 척한 뒤 수십배의 수리비용을 청구하거나 물건을 팔고 있다.

달서구 B아파트에 입주한 이모(39·여)씨도 싱크대 점검을 나왔다는 한 남자에게 속아 20~30배 바가지를 썼다. 그는 레인지 후드가 종이로 돼 있어 화재 위험이 있으니 안전한 제품으로 바꾸라고 권유했다. 이씨는 "시중가보다 2만원이 싸다고 해서 8만원을 주고 필터를 샀는데, 마트에서는 3천원밖에 하지 않았다"고 했다.

최모(45)씨도 최근 하자보수 점검을 나왔다며 관리사무소 직원을 사칭한 사람에게 속아 시설관리보증금으로 19만원을 날렸다.

이들은 대부분 공사업체 유니폼을 입고 접근하는데다 아파트 내부 사정을 잘 알아 입주자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피해자들이 입주한 지 얼마 안 돼 관리사무소나 이웃에게 즉시 확인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용, "다른 집들은 다 바꿨다"는 식으로 구매를 강요하고 있다.

대구소비자연맹 관계자는 "무료체험, 공짜, 사은행사 등을 내세울 경우 사기성 상술일 가능성이 크다"며 "허위 전화번호를 사용하는 등 추적이 쉽지 않은 만큼 현금을 주면 피해보상이 어렵다"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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