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르는 것 같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고
흙먼지를 일구는 저 길을 쉥, 하고 가로질러 왔네
가랑이를 오므리고
발판에 단화를 신은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기린의 귀처럼 붙어 있는 백미러로
지나간 풍경을 멀리 훔쳐보며
간간, 부레끼를 밟으며
그녀가 풀 많은 내 마당에 스쿠터를 타고 왔네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샴푸향기 풍기는 긴 생머리, 짧은 치마 아래 드러난 맨살 다리. 가랑이를 오므리고 '간간, 부레끼'를 밟으며 '쉥,'하고 골목을 누비는 빨간 화이바 아가씨. 성호세차장에도 성동부동산에도 터질 듯 부푼 청춘을 배달하는 스쿠터 아가씨. 곁에 달라붙어 '부릉부릉' 조르고 투정하며 애교를 던지는 파랑새. 뻔하고 뻔한 삶, 나른하고 심드렁한 일상이 지배하는 골목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도심에만 있는 게 아니다. 딸기농장, 참외비닐하우스의 '흙먼지' 길을 가로질러 새참 대신 커피를 배달하는 아가씨. 풀죽어 축 처진 시간에 허연 허벅지로 일터에 활기를 불어넣는 아가씨. 그 아가씨들이 쓰는 빨간 화이바가 앵두를 닮은 건 당연한 일. 앵두보다 더 탱탱한 청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앵두는 정말 스쿠터를 타고 와 맺히는 건 아닐까. 둥글고 빨간 화이바를 쓰고.
장옥관 시인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