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촛불은 언제 꺼질 것인가?

입력 2008-06-06 09:2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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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말하는 문화의 차이는 바라보는 거리에 따라서 달라진다.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것이다. 지리상으로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의 문화는 한국과 너무나 흡사하면서도 자세히 보면 다르다. 세계의 여러 문화는 모두 같은 인간의 문화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서로 간에 넘어설 수 없는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문화의 차이는 충돌을 일으킨다. 미래학자들은 문화의 충돌을 앞으로 있을 예고편으로 말하고 있으나 실은 현재 진행형이며 개인 간에도 크고 작은 문화의 충돌이 쉴 새 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시위문화도 그 방법과 진행이 독특하다.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의 젊은 '붉은악마'들이 보여준 응원문화 역시 그 원조의 권위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그 후 이 응원방식은 한국문화의 대표적 이미지로 확산되었고 바로 앞으로 다가온 북경 올림픽의 응원 프로그램에서 그 총 지휘권을 맡고 있는 사람도 한국의 한 여성이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정치적 집단 시위 문화 역시 그렇다. 사전 계획 없이 시작된 4·19의 학생시위가 그랬고 이것이 한국의 민주화로 이어지는 6·29선언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다소 시끄럽고 다소 축제 같은 이러한 시위를 우습게만 볼일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오늘의 쇠고기 파동과 촛불시위가 결과적으로 어떻게 될까? 우리는 다소 궁금하고 초조하다. 정권 초기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오늘의 촛불시위는 쇠고기만의 문제가 아닌 다른 차원의 함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관심 있게 보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일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실지 당황스러운 편은 미국 사람들일지 모른다. 논리와 신뢰를 바탕에 깔고 의회 정치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국회의원들이 개원식도 마다하고 거리에서 젊은 애들과 어울려 삿대질을 해대는 모습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일 것이다.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어제의 멀쩡한 합의를 오늘에 뒤집어엎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 사람들은 신뢰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혀를 차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이다. 그 이상한 행동에도 다 이유가 있고 계산이 깔려있다. 겉으로 보면 한심스럽고 한탄스러운 일이지만 이익 추구의 관점에서 보면 나름대로 커다란 강점이 되기도 한다.

오늘의 촛불을 끌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우선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 시스템으로 권력행사를 하기보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방법을 통하여 가시적인 효과를 노렸기 때문이다. 파출소에 직접 가서 지시하기도 했고 전봇대를 뽑으라고 지적하기도 했으며 보좌관들이 두 손 모아 조아리고 결재받는 분위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걱정되는 것은 그가 강력한 CEO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적 난제를 푸는 일은 한 나라의 역사 그 자체이기에 시행착오가 용서되지 않는다. 사과하고 용서하는 일이 있을 수 없다. 회사의 사장이나 서울 시장처럼 사표 한 장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러한 업보를 쌓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도 역시 한때는 데모꾼이었고 이보다 더 심한 건설 현장과 철거 현장의 과격한 시위도 접해보고 해결해낸 경험이 있으며 스스로 이를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이 대통령의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해결책은 얼마든지 있으나 선택이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젊은 국민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이 대통령을 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언제나 자주 꺼내는 자신의 성공신화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훌륭한 성공담이라 할지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듣기에 따라서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유명우 한국번역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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