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향, 강력한 지휘자·평가시스템이 없다

입력 2008-06-05 10:20:34

[대구문화행정 이대로 좋은가] ⑥시립예술단의 얼굴 市響

허울뿐인 실기평정(오디션)과 이로 인한 실력 저하 등 시립예술단의 문제점이 보도(본지 4일자 3면 보도)되자 이에 대해 대구와 서울 등 음악계 전반에서 걱정 어린 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시립예술단의 얼굴인 시향의 경우, 교향악 축제 등을 통해 시향을 바라본 외부 평론가들이 문제점 지적과 기량 향상을 위한 대안을 쏟아냈다.

교향악 축제를 통해 17년간 대구시향의 음악을 접했다는 평론가 김규현씨는 대구시향에 대한 실망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는 대구시향에 대해 "구태의연한 연주를 하는 교향악단"이라며 "기획공연과 협연 등을 통해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대전 시향과 부천시향을 본받으라"고 전했다. 또 서울의 한 대학 교수는 시향에 대해 "특정 학교의 줄 세우기와 지역의 폐쇄성으로 변혁을 꾀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며 "단원과 대구문화예술회관 관장, 대구 시장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 있는 지휘자가 영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음악적 리더십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지휘자 영입과 동시에 대폭적인 물갈이를 주장했다. 특히 10년 이상 수·차석 등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권력자'로 부상한 단원들에 대해서는 실력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오로지 실력만이 정년을 보장하는 밑바탕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대구시향의 본보기로 서울시향을 꼽았다. 2005년 재단법인으로 새롭게 출발한 서울시향은 정명훈을 영입한 뒤, 현재 기량과 실력 면에서 국내 최고로 자리매김했다. 또 브람스 전곡 연주와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 실내악 연주, 해외 유명 아티스트와의 협연 등 기획 공연을 통해 기량 향상과 동시에 일반 청중들까지 대거 공연장으로 끌어들었다. 공정한 오디션으로 악장과 수석, 차석을 대폭 물갈이하는 동시에 미국 공연 당시 현지 오디션을 통해 신규 단원을 영입하는 등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지난 3년간 54명의 신규단원을 영입한 서울시향의 한 관계자는 "오디션을 통해 단원들이 바뀐 측면도 있지만 지휘자가 요구하는 음악적 기량을 충족하지 못해 스스로 시향을 떠난 단원들도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공석인 대구시향 지휘자 역시 '제2의 정명훈'이 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지난해처럼 단원들이 인기 투표를 통해 지휘자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등의 지휘자 흔들기를 막기 위해선 지휘자가 교향악단 운영에 대해 전권을 갖고, 이를 행사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예술단 부단장인 문예회관 관장과 대구시청 간부 등 시립예술단 단원들의 임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사들에게 줄서기를 할 수 없도록 지휘자에게 전권을 부여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예술단의 행정적인 관리는 문예회관이 맡되 지휘자·감독에게는 예술단 운영에 대한 전권을 주고, 철저한 실적 위주의 검증을 통해 이들의 교체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체제 개편을 제시하기도 했다.

단원들의 오디션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비평가들은 대구시의 행정력 부재를 지적했다. 대구시가 예술단의 감독이자 지휘자 신분으로 영입하는 전문가들에게 기량을 향상시킬 수 있는 권한을 이양하지 않아 오디션에 권위가 실리지 않는다는 것. 임현식 경북대 교수(음악학과)는 "지휘자에게 전권이 없는 데다 단원들 역시 지휘자를 신뢰하지 못해 오디션 결과에 반발하고 소송을 벌이는 사태가 벌어진다"며 "지휘자에게 전권을 주는 동시에 정명훈과 같이 단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인물을 영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대구에선 지휘자가 오디션을 통해 단원의 재임용 거부 의사를 밝혀도 문예회관 관장과 시장의 거부로 유야무야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24명의 신규단원을 영입한 창원 시향의 경우도 시립예술단 단장인 부시장과 부단장인 생활복지국장이 지휘자에게 전권을 이양하면서 대폭적인 단원 교체에 성공할 수 있었다. 창원 시향 한 관계자는 "비록 내부 진통은 있었지만 전형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오디션 결과는 단장과 부단장의 지지를 얻어 지휘자의 의견이 그대로 반영됐다"고 전했다. 인맥 등에 얽매여 행정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대구시와는 전혀 딴판의 모습이다.

또 예술 감독(지휘자) 영입에서도 평가시스템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는 지난해 시립오페라단 감독 자리에 오페라 연출 경력이 전혀 없는 40대 감독을 영입해 음악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문제가 대표적인 평가 시스템 부재 사례로 손꼽혔다. 이에 대해 타 지역 시립예술단의 한 감독은 "평가 시스템 도입 없이 영입된 지휘자에게 단원 기량 향상이라는 과제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라며 "정확한 평가 시스템 도입을 통해 단원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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