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30년 똑같은 전시물·낡은 시설…참전 영령들은 슬프다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대구 앞산의 '낙동강 승전기념관'. 그러나 대구를 죽음으로 지켰던 참전용사의 얼을 기리는 발걸음은 해마다 똑같은 전시물과 시설 곳곳에 쌓인 먼지에 날아가고 있다.
4일 오후 1시쯤 한국전쟁 당시의 참상을 알리는 사진과 동족을 향해 겨눴던 무기가 전시된 기념관을 둘러봤다.
사진은 곰팡이가 피고 색이 바래 내용을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합판에다 인화지를 붙인 사진들은 접착제가 떨어져 너덜너덜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2000년 이후의 사진이라고는 2002년 1차 남북정상회담 사진 몇장이 전부다.
전시실 한쪽에 놓인 초코파이 상자와 콜라병은 북한 제품보다 우리 제품의 우수성을 자랑하기 위한 전시물이다. 유치원생들을 인솔하고 온 한 어린이집 교사는 "세상은 첨단을 걷고 있는데 이곳은 마치 시간이 멈춰진 듯하다"고 했다.
당연히 방문객들은 교훈은커녕 볼거리조차 없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청소년 통일준비 민주시민 교육'을 받으러 왔다는 300여명의 고교생들은 연방 하품을 해댔다. 차진석(16)군은 "오전에 시청각실에서 한국전쟁의 발발과 진행 과정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화질이 나빠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다"고 했다.
학생들은 고화질 HD시대에 마치 낡은 흑백TV를 보는 듯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김준혁(16)군은 "강당 안에는 냄새가 진동하고 의자도 낡아 1시간을 앉아 버티기 힘들었다"고 했다. 시청각실 바닥 곳곳에는 먼지와 널브러져 굴러다니는 휴지가 눈에 띄었다.
해마다 대구지역 100여개 고교 학생들이 견학을 오고 교육을 받지만 개관 후 30년째 똑같은 프로그램만 반복되고 있어 배울 것 없다는 학생들의 불만은 당연해 보였다.
운영을 맡고 있는 자유총연맹 측도 답답하기만 하다. 대대적인 전시물 교체나 시설 보수는 예산 부족으로 10여년째 발목이 잡힌 상태다. 조만간 국가보훈청(5억4천만원), 대구시(8억원), 자유총연맹의 자체예산(4억6천만원) 등으로 총 18억원을 지원받아 리모델링을 계획하고 있지만 예산이 배정될지 미지수다. 자유총연맹 측은 "내년에 반공교육에서 벗어나 통일교육에 중점을 둔 체험시설들로 꾸미는 계획을 세워 놓았지만 예산 때문에 발만 구르고 있다"고 했다.
김갑수 사무처장은 "거제도 포로수용소나 서울의 전쟁기념관처럼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교육시설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며 "유동인구가 많은 앞산에 자리 잡고 있지만 낡은 시설로 외면받고 있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고 했다.
낙동강 승전기념관은 한국전쟁 당시의 마지막 보루였던 낙동강 승전을 기념하고 참전용사의 얼을 기리기 위해 1979년 6월 25일 문을 열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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