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단속 와중에도 시너 넣으려는 車 밀려

입력 2008-06-03 09:34:21

대구 유사휘발유 판매 단속 현장

▲ 유사휘발유 업소 특별합동단속 첫날인 2일 단속반원들이 달서구 월암동 한 유사휘발유 영업소를 단속하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유사휘발유 업소 특별합동단속 첫날인 2일 단속반원들이 달서구 월암동 한 유사휘발유 영업소를 단속하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주유 중일 때 잡아야 됩니다. 조금 더 있다가 덮칩니다."

2일 오전 11시쯤 대구 달서구 월암동의 비상활주로 인근 컨테이너 박스. 유사 휘발유(시너) 단속을 나온 공무원들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50m 떨어진 곳에서 20여분을 지켜봤다. '손님'으로 보이는 흰색 소나타 승용차가 컨테이너 뒤편으로 들어갔다. 반바지 차림의 젊은 남성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검은 천으로 된 가림막을 내렸다. 시너 불법 주유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버젓이 대낮 영업

대구시와 한국석유품질관리원, 대구주유소협회, 정유사 직원 등으로 구성된 유사석유제품 단속반의 특별합동단속이 시작된 2일. 단속반이 첫 타깃으로 잡은 달서구 일대 유사 휘발유 업소는 대낮에도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단속반원이 들이닥친 순간 업소 내부에는 예상대로 시너 주유가 한창이었다. "주유기 빼지 마세요!". 단속반원들은 증거를 남기기 위해 카메라로 주유 장면을 촬영했다. 운전자는 황급히 차를 타고 빠져나가려다 제지됐다.

내부에는 수십통의 시너통이 쌓여 있었고 경비업체 경보장치까지 달려있었다. "현금이 많으니까 장치를 달았겠죠." 벽면에는 '휘발유 1ℓ 1천900원(36ℓ 6만8천400원), 시너 1ℓ1천222원(36ℓ 4만4천원)'이라고 적힌 가격 비교표가 달려 있었다. '물(시너)을 받아간 차량'들의 차종(車種)과 판매량이 빼곡히 적힌 장부도 발견됐다.

30대 초반의 업주는 "영업한 지 한달도 안됐다"며 매달렸고, 주유를 하다 걸린 승용차 운전자도 "한번만 봐달라. 오늘 처음 넣었다"고 애원했다. 단속반은 업주와 운전자에게서 유사 휘발유 주유 확인증을 받았고, 업주로부터는 보관 중인 시너를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한장 더 받았다. 단속반원은 "장사가 잘되는 곳은 주유소보다 더 낫다. 순익이 월 1천만원이 넘는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1시간 뒤인 달서구 성당동의 한 대로변. 단속반은 유사휘발유 영업장 두 곳에 잇따라 들이닥쳤다. 가게 앞에는 '시너 36ℓ=3만4천원'이라고 적힌 광고판이 걸려 있었다. 단속반은 주유구를 열고 있는 업주를 상대로 확인증을 받았다. 이 와중에도 시너를 넣으려는 차들이 계속 들어왔다.

◆벌금받아도 다시 문 연다

"단속할 때뿐이죠. 오전에 단속되면 오후에 금방 문을 엽니다." 한 단속반원이 씁쓸하게 웃었다. 유사휘발유 판매업소들은 단속에도 아랑곳 않는다. 솜방망이 처벌이 큰 이유다.

현행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에는 유사 휘발유 주유시 업주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억원 이하 벌금형, 운전자는 50만원 벌금을 받게 돼 있다. '무시무시한' 처벌 같지만 실제로는 '생계형 범죄'라는 이유로 약식기소되고 벌금형이 고작이다. 업주에게는 1차 때 100만원, 2차 때 200만원, 3차 때 300만원으로 100만원씩 벌금이 늘어나는 게 보통이다. 4번 걸리면 사법처리 되지만, 대부분 그전에 권리금을 받고 업소를 넘긴다.

이날 단속된 한 업주는 "단속을 벌써 두번 받았다. 벌금값 빼려면 영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다른 가게에서는 적발될 것에 대비해 하루 매출 가운데 일정액을 벌금으로 적립해 놓는 곳도 있다"고 했다.

단속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대구시와 구·군청의 유사 휘발유 단속 공무원은 1명씩뿐이다. 이마저도 단속 업무 외에 5, 6가지 겸무를 하기 때문에 좀처럼 단속 현장에 나서기 어렵다.

(사)한국주유소협회대구지부 공문옥 과장은 "휘발유·경유값이 ℓ당 2천원에 달할 정도로 오르니까 유사 휘발유 업소가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하루빨리 전담팀이 만들어져 지속적인 단속을 해야 한다"고 했다. 대구의 주유소 수는 430곳에 불과하지만 유사휘발유 업소는 그 두배인 900곳으로 추정된다.

이날 첫 단속에서 특별합동단속반은 달서구 지역 불법시너업소 6개소를 적발했고, 3천360ℓ(16ℓ들이 시너 210통) 시가 420만원 상당의 유사휘발유를 압수했다. 특별단속은 이달 말까지 계속된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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