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대화] 시인 송종규

입력 2008-05-31 07:41:36

시도 낮빛도 어둡지만 시가 있어 행복한 사람

'그 방은 침묵 속에 싸여 있고 그 방에는 아무도 살지 않고 그 방은 너무 휑하고 그 방에는 너무 가벼운 내가 있을 뿐인데 그 방은, 꽉 차 있다. 그 방은 혼돈으로 꽉 차 있고 그 방은, 가혹하거나 간절한 말들이 터질 듯 팽창해 있다.' -지독한 사랑- 중에서.

송종규는 저렇게 말함으로써 현실에 부재(不在)하는 자신을 드러낸다. 그녀의 시 '지독한 사랑'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자신과 자신이 바라는 형태의 자신이 일치하지 않음을 절절히 드러내는 작품이다. 분명히 내가 있음에도 없는, 분명 그 방에 살고 있지만 빈, 그럼에도 방은 꽉 차 있는…. 그 방에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닌데, 그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송종규의 '그 방'은 집안의 물리적 방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지칭하는 언어이기도 하다. 존재함에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저 컴컴한 것이 삶이냐'-개 같은 한낮-고 물음으로써 적어도 시인은 '저 컴컴한 삶'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의식을 보여준다. 현실에 대한 공격 혹은 부정은 시인 자신이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현실 부정을 강화하기 위해 송종규는 '무덤/죽음/오물/빗장/벼랑/짐승/비린내/폐허/절망'과 같은 명사들을 무수히 동원한다. 명사 그 자체로도 세계의 부당함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송종규는 이런 부정적 명사를 동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전화기는 아무도 불러내지 않고, 계단은 어디로든 오르내리지 않고' (옷걸이들 중에서)에서는 긍정 혹은 부정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사물 '전화기·계단'의 행위를 용언이 부정함으로써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어내고야 만다. '꽃잎'을 굳이 '찢어진 꽃잎'으로 규정함으로써 통념적으로 꽃잎에 새겨지기 마련인 '아름다운 세계'를 갈가리 찢어버린다. 시인 송종규의 세상은 그래서 어둡다.

시인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효성여대(現대구가톨릭대학교) 약학과를 졸업했다. 화목하고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고 학창시절 모범생이었다. 대학 때 약사면허를 취득한 만큼 자기만의 일을 가질 수도 있었다. 자식들도 다 잘 커주었다.

이력만으로 본 시인 송종규는 평화롭게 살아온 사람 같다. (좀 억지를 부리자면) 송종규는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 얼굴에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써 붙이고 다녀도 뭐라고 입댈 사람이 없다. 그러니 그녀는 시가 아니라 일기조차 쓸 필요가 없어 보인다.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쓰지 않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그녀는 오랜 세월 시를 썼고, 그 시는 어둡다. 시인 송종규와 인터뷰하던 날 동석했던 사람들은 모두 '시도, 낯빛도 목소리도 어둡다. 환한 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사람의 삶은 비극이다. 이 비극은 경제적 윤택 혹은 빈곤, 삶 속에 번지기 마련인 웃음이나 울음과 무관하다. 존재론적으로 보면 인간의 삶은 그 자체로 비극이다. 18세 때 나는 내 나이가 너무 많다는 생각에 깜짝 놀랐다. 벌써 스무 살이 다 돼 가는구나…. 이제 내 삶은 낡음과 죽음에서 멀지 않았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인생의 유한함이 나를 짓눌렀다."

18세에 '먹은 나이' 때문에 우울했다면 그녀는 근본적으로 어두운 사람이 분명하다. 열여덟을 꽃다운 나이가 아니라 '늙은 나이'로 인식했다니 말이다. 그녀는 기독교인이라고 했다. 그래서 때때로 자신의 종교와 시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종교는 희망을 이야기하는데 자신의 시는 그 역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지만 안 되더라"고 했다.

송종규는 졸업반 때 약사면허증을 취득했지만 그 면허증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개업은 애당초 생각지도 않았다. 그녀는 약국을 여는 대신 방에 틀어박혀 시를 썼다. 집에 시를 쓸 만한 작은 공간이 있었고 그녀는 종일 거기 틀어박혀 시만 생각했다. 송종규의 자신에게 시는 선택이자 도피였다고 했다. 유한한 삶에서 가치 있는 일은 시작(詩作)밖에 없다고 단정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시 세계에서 행복했다. 한여름에도 나는 선풍기를 잊었다. 나는 시 세계에 있었고, 물리적 더위를 알지 못했다."

그런 송종규에게 변화가 온 것은 2000년 무렵이다. 그때 그녀는 약국일을 처음 시작했다. 의약분업 이후 동네 약국을 잠시 봐준다며 시작한 일이었다. 그 무렵 또 하나 생긴 변화가 시에 대한 태도였다. '도대체 내 인생에 시가 무엇인가.'

송종규는 "이전까지 나는 시를 쓰기 위해 삶을 꾸려왔던 듯하다. 그러나 그 무렵부터 삶을 위해 시를 쓰는 사람으로 조금씩 변했다"고 했다. 어쩌면 현실 속에 발 담근 자신의 존재를 희미하게나마 발견하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전까지 현실 속에서 부재하던 자신이 드디어 실체를 가진 존재로 보여지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송종규는 다시 시 세계로 돌아가는 대신 개업했다. 현실을 바탕으로, 현실 속에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인으로 등단하고도 한참 지난 후였다.

송종규의 시는 적어도 두 번 읽어야 한다. 첫 번째 읽을 땐 너무 어렵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읽으면 일관성 있는, 뚜렷한 이미지가 보인다.

'낡은 액자 속으로 폭설이 내리고, 전화선을 타고 검은 바다가 쳐들어왔다. 운명이, 너무나도 빤히 남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중략) 누군가 헐렁한 신발을 끌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세상의 모든 무덤들이 타박타박 폭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고요한 입술- 중에서.

여기서 '낡은 액자'는 갇힌 영혼, 움직이지 않는 현실을, '전화선'은 소통의 채널처럼 보이지만 느닷없이 불행을 알려주는 통로 혹은 불행이 걸어오는 길을 의미한다. '검은 바다'는 불행을, '헐렁한 신발'은 부조화를, '폭설'은 모든 불행까지 철저하게 덮어버리는, 말하자면 불행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언어이다. 불행했던 사람의 주검을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불행의 기억조차 매장해버리는(폭설)이 아니겠는가.

시인은 혹시 남성 사회를 공격하고 있는 것일까? 송종규는 '아니요'라고 잘랐다. 그녀는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내 시에 나타나는 회색빛은 사람이면 누구나 갖기 마련인 근원적 빛깔에 관한 것이다. 나의 시는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지 않는다"고 했다. 송종규는 시간이 갈수록 내 시는 밝아지고 있다, 고 했다. 시적 언어는 점점 짧아지고, 빛깔은 조금씩 밝아오고 있다는 말이었다. 몇 년 더 세월이 흐르면 시인 송종규의 목소리가 좀 더 밝고 높아질지도 모르겠다.

▷시인 송종규는….

1952년 경북 안동 출생. 효성여대(現대구가톨릭대) 약학과 졸업. 1989년 '심상'으로 데뷔. 시집 '그대에게 가는 길' '고요한 입술' '정오를 기다리는 텅빈 접시' '녹슨방' 등이 있다. 2005년 대구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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